길산이 묘옥의 작은 어깨를 끌어안으니 그 여자는 사내의 가슴팍을 파고들며 울음을 죽였다.
"저는 세상에서 제일 천하구 더러운 계집이에요."
길산은 묘옥의 등을 토닥토닥 두드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청천 하늘엔 잔별도 많고, 우리네 살림엔 수심도 많네,,,,, 더욱 영롱해진 새벽별들이 먼 마을의 들창인 듯 가물대고 있었다.
"꼭 안아 주셔요."
묘옥이 두 손을 모아 길산의 가슴에 붙여 기대면서 말했다. 그는 여자를 감싸듯 껴안았다. 먼 곳에서 울던 부엉이 소리가 끊겼다 이어지면서 차차 가까이 들리더니, 그들이 솔밭에 날아와 오랫동안 울었다. 묘옥은 실신하듯 길산의 어깨에서 미끄러지면서 한 팔로 길산의 목을 감은 채로 젖은 풀 위에 비스듬히 누웠다. 길산이 묘옥과 함께 나란히 눕는데 묘옥은 그의 저고리 속으로 손을 넣어 가슴을 쓰다듬었고, 길산은 묘옥의 무명치마를 젖혀 올렸다. 길산이 묘옥의 속바지를 끌어내리려 하는데 그 여자는 이마를 그의 가슴에 꼭 붙인 채로 몸을 이리 곰실 저리로 곰실 뒤틀었다. 묘옥의 속바지가 끌어내려지자 속곳만 남아 두 다리의 맨살이 드러났는데 묘옥은 길산의 목을 조여 안은 채 눈을 감고 있었다. 길산은 걷잡을 수 없이 떨리는 손으로 묘옥의 옷고름을 이리 당기고 저리 푸는데 묘옥이 그의 목에 휘감았던 팔을 풀고 손을 내려 갈산의 바지끈을 끌렀다. 묘옥의 저고리 자락이 활짝 젖혀졌다. 두 살이 닿자마자 부끄러움은 어느 결에 멀어지고 이제 묘옥의 손놀림이 대담하고 익숙해지기 시작하여 길산의 저고리를 젖히고 온몸으로 맞부볐다.
만첩청산 늙은 범이 암캐를 물어다 놓고 이가 없어 먹지는 못하고 흐르름흐르름 아웅 어루는 듯, 북해의 흑룡이 여의주를 입에 물고 색구름 사이에서 넘노는 듯, 단산의 봉황이 대열매를 물고 벽오동 속으로 넘나드는 듯, 연못 깊은 곳에 청학이 난초를 물고서 오송간에 넘노는 듯, 두 몸이 칡덩굴처럼 어우러져 풀어질 줄을 모르고 감겨만 드는데, 묘옥은 길산의 탄탄한 어깨에 손톱을 찍어 누르면서 몸을 열었다. 봄비 내린 찰흙 속으로 뻗어 내리는 억센 소나무 뿌리처럼, 그의 신근이 묘옥의 열린 몸속으로 깊이 들어갔다. 잔솔밭 위를 지나가는 바람소리가 제법 스산했고, 흔들리는 나뭇가지에서 가끔씩 솔잎이 떨어져 그들의 벗은 몸 위에 내려앉았다. 길산의 춤사위가 용트림에서 깨끼리 장단의 허리잡이 춤으로 바뀌었다. 녹수청산 깊은 골에 청룡 황룡이 굼틀어졌다. ''''' 떠엉 떠떠 꿍덩, 떠덩 떠덩 떠떠 꿍덩.
그들의 춤은 허리잡이에서 다시 마당을 온통 질타하는 듯한 취발이의 난무로 떠올랐다. 묘욕의 허리는 활처럼 휘어져 길산의 몸을 따라 붙어 올라갔고 옥문은 온천처럼 열에 끓었다.
길산의 연장은 마치 정월 대보름의 끌고 당기는 동아줄처럼 팽팽했다. 묘옥의 두 다리가 길산의 허리께에 둥글게 감겨져서 풀어질 줄을 몰랐다. 별이 쏟아져 내려오는데, 처음에는 한 두낱씩 나중엔 수십낱, 몸짓이 거세어질수록 별들은 우박처럼 와르르르 쏟아져내려왔다. 묘옥은 하늘처럼 믿음직하고 산처럼 튼튼한 내 서방님 품에 이제사 안기는 것만 같았다. 새벽 강가에 뛰쳐나와 차가운 물을 마시는 목마른 산짐승처럼 그들의 정분은 거칠고 싱싱했다.
일찍이 살 섞는 짓이란 자연의 하나인 사람이 그 품성대로 따른 일이언만, 고귀한 사람들은 번거로이 형식과 치장을 좋아하여 생명을 스스로 체면치레의 족쇄로 채운 격이었다. 풍습에 반상의 구별이 달라서 양반의 사랑은 헛기침과 곁눈질에 거드름으로 묶여 있었지만, 상사람들은 밭을 갈고 씨를 뿌리듯 건강하게 들판에서, 논밭 고랑에서, 토방에서, 솔숲에서, 낟가리 속에서, 그리고 부엌에서 거침없이 섞였다. 가난한 지붕 아래 헐벗고, 주린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그들의 힘은 바로 많은 아이들이어서 저 먹을 것은 타고 난다고 스스로 굳게 믿었던 것이다. 빼앗기고 들볶여 더 이상 눌릴 수가 없어 힘을 모으지 못하면, 그 울분으로 제 마지막 힘인 연장을 끊어 들고 관가로 달려갔었다.
길산은 묘옥에게 팔을 베어주고 오랫동안 풀 위에 누워 있었다. 그들의 귀에 다시 벌레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땀이 식어서 몸이 차가와졌다. 묘옥은 길산의 가슴에 귀들 대고 심장이 퉁탕대는 소리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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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군은 부처를 독실이 섬기는지라 언제나 녹림 중에 숨어 있고 머리는 번들번들 삭발을 하였는데 목이 굵어 치켜 올리는 기운이 장하고 한 가지 흠이라면 눈이 외눈이었느니라. 보통 때는 성격이 온순하였으나 한번 성이 나면 수염이 꼿꼿하고 힘줄이 온몸에 드러나서 어떤 일이 있더라도 오래도록 일어서서 굽힐 줄을 몰랐더라. 하지만 남을 공경할 줄 알고 조심하여 자주 몸을 굽혀 끄덕거리었는데 몸에는 언제나 토홍(土紅)빛 단령(團領)을 입고서 비록 엄동폭서를 당할지라도 벗을 줄을 몰랐다. 무릇 출입할 적에는 반드시 두개의 환자(丸子)를 붉은 주머니에 넣어서 잠시라도 몸에서 떠날 새 없이 차고 다녔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일컬어 모두들 독안룡(獨眼龍)이라 하였다. 이웃에 장중선(掌中仙), 오지향(五指香)이라는 두 기생이 있었는데, 장군은 이들을 좋아하고 즐겨하더라. 그러므로 남몰래 그들과 번갈아 자주 만나다가 드디어 두 기생들이 서로 알게 되어 주먹을 휘두르면서 죽네 사네 달려들었으나 장군이 워낙에 성질이 온순하여 두들겨 맞아 눈시울이 찢어지고 눈물이 옷깃을 적시었으나 오히려 달게 받고 웃으며 말하기를, 하루라도 너희 주먹에 맞지 않으면 마음이 편치 않고 섭섭하구나, 하였으니 이 얘기를 전해 듣는 모든 이가 장군을 천하게 여기었다. 주장군은 그로부터 절조를 굽힌 것을 크게 뉘우치고, 기회가 있으면 이름을 회복하리라 굳게 맹세하였더라. 일찍이 장군은 닭의 벼슬성 붉은성 중에 한 작은 못이 있어 그 물이 덥고 백병을 고친단 말을 들었다. 그 연못의 임자인 관(灌)부인께 주장군이 편지를 보내니,
불초 주명은 머리 조아려 절하고 말씀드리노니, 한쪽 눈이 맑지 못하나 향기로운 이름을 들어온 지 오래어 가려움기가 있어 한번 목욕함을 원하나니, 만일에 온탕을 허락하시어 효험을 얻는다하면 부인의 청을 달게 받들겠사오며, 아들 딸 많이 낳으심을 비나이다.
관부인이 답장을 써 보내되,
누추한 거처가 비록 음퍽지고 습하나 일찍이 나라에서 첩으로 하여금 주관케 하시고 또한 칙유(勅諭)하시기를 못 물을 흐리게 하지 말라하셨으니, 비록 장군의 명령이오나 따르기가 어렵사옵니다.
주장군이 이것을 본 후에 노기가 등등하여 즉시 자리를 차고 일어나 낭주 두 태수를 불러 대령시키고,
너희들은 내 관하에 있으니, 모름지기 몸과 마음을 한데 뭉쳐 이성을 함락시킬지어다.
일장 훈계를 하고는 야음을 틈타 양각봉(兩脚峰)으로 하여 음릉천(陰陵泉)을 둘러 벽문을 뚫고 들어가 수전(水戰)으로 시작하니, 부인은 근심걱정 끝에 임금에게 상소하고 이르기를,
신이 긴요한 땅에 오래 살면서 오로지 도용(陶鎔)의 책임을 맡아서 천자 제후 양상 명장이 모두 신의 공에 의한 바이온데, 어찌 그 보람이 적다하리오. 이제 주장군이 몹시 사납게 욕심을 부리고 비력이 과인하여 갑자기 쳐들어오니, 이는 실로 눈앞의 대환이라 전후사를 잘 살피시와 신을 도와주옵소서.
천군이 다 보시고 크게 노하시고 하명하시기를,
제중서(臍中書)는 산마루에 있으면서 멀리 바라보고 적의 동정을 살피라. 황문랑(黃門郞)은 입에 비록 내음이 나지만 본디부터 취라를 잘 부니, 적이 만일 지경을 침범하거든 취라를 불어 아뢰라. 모참군(毛參軍)은 우림위(羽林衛)를 거느리고 적이 관문을 침범하거든 검은 노를 써서 적의 목을 묶어오라. 현(弦)은 방위를 잘하라. 적이 만일 성벽을 뚫고 들어오거든 마음을 합하여 이를 잡아서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라. 갑(閘)은 어사를 하이니 망치와 도끼를 써서 적과 싸워 그 대가리를 쳐부숴라.
이와 같이 각기 분담을 시켜 지키게 하니 관부인이 입을 열어 혀를 날름거리면서 청사하여 마지않으면서 삽혈동맹(揷血同盟)을 맺고 힘껏 지킬 것을 약속하였더니, 갑자기 장군이 노기가 대발하여 투구도 집어던지고 몸을 날리어 관문을 부수고 세 번이나 들락날락 하면서 한결같이 옥장지술(玉帳之術)에 의하여 좌충우돌하고, 용도지법(龍도之法)에 맞추어 종횡으로 문짝을 치니 나아가는데 적이 없더라. 관부인의 나라 밑이 흔들리매 그 세력을 지탱하지 못하고 백수진인(白水眞人)에게 구원을 청하였다. 진인은,
장군은 성질이 불같아서 나오는 것도 날카로우나 물러가는 것도 또한 빠르니, 크게 걱정할 것 없이 에워싸서 물질을 하여 그 기를 꺾어라.
하니 부인이 그 말을 옳게 여기고는 시키는 대로 물을 퍼부어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하니, 장군이 물에 흠뻑 빠져서도 죽을힘을 다하여 내지(內地)를 유린하더니, 마침내 피로하여 피를 토하고 창을 던지며 물러가더라. 부인은 분함을 이기지 못하여 입가에 거품을 일으키며 여러 장수들을 향하여 꾸짖는다.
여러분과 함께 군명을 받잡고 주장군의 대가리를 무찔러 천군에 보답할까 하였더니, 장군을 놓치고 만 그 허물은 여러분에게 있소. 하고는 그 상황을 낱낱이 적어서 천군에게 아뢰니, 천군은 즉시 제중서 등을 불러 그 사실을 밝히는데 먼저 제중서가 이르기를,
신이 붕두에 잠복하여 주야로 장군의 동병을 바라보고 살피다가 봉화를 올리려고 한즉, 갑자기 이불 바람이 불어 꺼진 바가 되었으니 이로 인하여 봉화를 올리지 못했나이다.
황문랑이 이어서 아뢰기를,
신이 매양 염려하여 때때로 포를 놓아 엄하게 경비하여 장군이 관문 가까이 올 때를 기다리니 장군이 먼저 생가죽 자루에다가 큰 바위 두개를 넣어서 신의 뺨을 사정없이 연신 치니 부득이 수족을 쓰지 못하와 신이 취라를 불지 못하였나이다.
모참군이 나와서 아뢰기를,
신이 우림(羽林)을 정재하여 노줄을 가지고 기다렸으나 장군의 용력이 절륜하고 진퇴가 귀신 같으니, 신의 느린 힘으로 도저히 묶지 못하는바요. 신이 힘쓰지 않음이 아니올시다.
현방어(弦防禦)가 또한 나와 아뢰기를,
신등이 북문의 견고함을 믿고 맡겨 순치(脣齒)가 상의(相依)에 좌우공현(左右控弦)하더니, 장군이 북문에 달려들어 오더니, 곧 안문에 달려들어 좌충우돌 번개같이 나타나서 귀신같이 사라지니, 온몸이 땀이라 미끄러워 잡지 못하였으니 신의 부족한 재질로서 잡기는 어려운 바요, 어명을 받들지 않은 것이 아니옵니다.
갑어사(閘御史)가 주관을 머리에 쓰고 오똑 홀로 앉아 자못 뽐내는 낯빛으로 아뢰기를,
장군이 깊이 들어가 싸움하는 것을 보고 주해고사(朱亥故事)를 생각하와 그 술법을 써서 장군의 뒤통수를 치니 골수를 흘리며 관문 앞에 나와 자빠졌으므로, 오늘의 공은 신이 남에게 사양할 바 못되는 것으로 아뢰오.
천군이 대단히 기뻐하여 과연 경의 공은 큰지고, 하고는 즉시 알자복사(謁者僕射)를 하이고 항상 부인 막중에 있게 하니, 부인이 또한 그 오똑하고 곧음을 사랑하여 모든 안일을 다 맡기더니, 다시 주장군이 쳐들어오더라. 주장군이 사졸과 함께 고락을 같이 하며,혹은 타이르고 혹은 파헤쳐서, 혹은 반면만 보이고 혹은 전체를 나타내어 구부렸다가 폈다가 엎디었다 제쳤다 들어갔다 나갔다, 몸을 굽혀 있는 힘을 다하여 거의 필사적이다.
일이 아직 반도 못하여서 비로소 맑은 물줄기 몇 가닥이 흘러서 마지않더니 갑자기 흐린 조수가 용솟음쳐 나와 감당이 불감당이라. 전 섬이 몽땅 물에 빠지고 수풀도 잠겨졌으니 장군 또한 어찌 면하였으리오. 온몸이 흠뻑 젖어 태연히 서 있으면서 머리털 하나 까딱하지 않았었다. 밤이 되어 관부인이 가만히 엿보니, 장군은 다시 사졸을 독려하여 연못파기에 정신이 팔려서 전후를 분간치 못하는 고로 기회를 이용하여 가만히 그 머리를 깨물고 또한 잡어사를 시켜서 두드리게 하니 장군은 머리가 터져 흰 골수를 몇 술 흘리고 힘이 다하여 드디어 죽어 버리더라.
이 부고를 들은 왕은 몹시 애통히 여겨서 맹에게 장강온직효사홍력공신長剛溫直效死弘力功臣)이란 호를 내리고 예로써 곤주에 장사하였으니·········.
황석영 著 『장길산』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