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월 송학, 이월 홍매화, 삼월 벚꽃이 모여야 홍단 삼점이다.
홍매화(산당화)가 절 입구에서 수줍은 듯 붉음을 자랑한다.
다산 정약용의 매조도를 기리는 시가 있어 퍼왔다.
매조도(梅鳥圖)*를 두근거리다./ 최분임
치맛자락에 달라붙는 연둣빛을 털어내고 들어왔습니다.
세월의 말간 걸음걸이 당신의 기별인 듯 이곳은 염두에 두지 말라고 한바탕 퍼붓고 돌아섰습니다. 녹슨 쟁기, 가슴에 고랑을 만드는 기척을 다 북돋아주지 못했습니다. 땅이 속눈썹을 떨며 일어서는 악착, 봄이라 불러주지 못했습니다.
봄빛 우북한 매조도가 우물물 한 바가지에 꽃잎 몇 띄워 건네는 그 품을 헤아립니다. 한기 끝에 매달린 꽃을 고쳐 눈물 내려놓으라는 당부로 읽습니다. 뒤돌아보는 새 한 마리, 꽃 대신 당신에게 낯선 얼굴이었을 때 분홍에 가까웠던 시간을 묻습니다. 위리안치(圍籬安置)된 매화나무, 여백의 방향을 결정짓지 않고 가장 먼저 도착합니다.
처마 밑 둥지를 튼 슬픔이 툭 하면 날개를 펴는 통에 매조도 속 나뭇가지, 비어 있기 일쑵니다. 털썩 주저앉은 툇마루를 물고 날아가는 새 두 마리, 먼 강진이 깃털처럼 흩날려도 다홍치마 화폭 당신은 끄떡도 않습니다.
뒤돌아보면, 그리움은 그림자조차 거느리지 않고 피는 꽃 아니던가요. 뿌리도 모르고 향기도 없이 왈칵, 쏟아지는 허방 아니던가요.
*유배 중이던 다산 정약용이 시집간 딸을 위해 부인의 치마폭에 그린 그림과 시
최분임, 『실리콘 소녀의 꿈』, 문학의 전당, pp.16~17.
솔직히 말씀드리면, 최분임 시인의 시는 편차가 있습니다. 물론 그것은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 이유를 말씀드리면, 오랜 시간 써온 시를 한데 묶은 까닭입니다. 저는 2009년에 등단을 했고 첫 시집을 2016년에 냈으니, 7년이나 걸렸습니다. 부지런히 시를 썼다면, 시를 걸러내어 괜찮은 시 위주로 수록했을 텐데, 쓴 시 자체도 많지 않아, 편차가 발생했습니다. 최분임 시인도 그러할까요? 시인을 잘 모르는 처지라, 뭐라 말씀드릴 수는 없습니다. 저는 시인의 보내준 시집에서 이 시를 가장 좋게 읽었습니다. 아마 이 부분도 개인적인 편차가 있을 것입니다. 고어적인 문체가 제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화자의 말투가 독특합니다. 말은 우리가 쓰는 말(현대어)이지만, 느낌은 ‘고어’적입니다. ‘다산선생’을 말하고 있고, 선생의 역사적 배경을 다루고 있어 더 그렇게 느껴지는 모양이기도 합니다. 생소한 단어도 눈에 많이 띕니다. ‘매조도(梅鳥圖), 말간, 우북한, 위리안치(圍籬安置), 다홍치마, 허방’이 제 눈에 들어옵니다. 이 중 ‘위리안치(圍籬安置)’라는 단어가 가장 특별한데요, 위리안치란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도록 가시로 울타리를 만들고 그 안에 가둠’이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입니다. 시인이 이 단어를 어떻게 알았는지, 자못 궁금하지만, 확실한 것은 ‘위리안치된 매화나무’가 당시 다산의 상황을 너무나도 잘 은유하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산선생'의 매조도(출처 : 고려대 박물관)
다산의 삶을 생각해봅니다. 다산을 기리는 단체에서 오랫동안 메일을 받고 읽고 있어, 다산의 삶과 강직함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습니다. 그는 말과 글, 삶이 일치한 삶을 살았던 학자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진에 유배되었지만, 그 억울함에 지지 않고 현명하게 그 시간을 사용하였습니다. 다산의 사상이 오늘날까지 전해져 온 것은 어쩌면, 그 정신(극복하고자 했던)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 누군가의 모함에 의해 십수 년을 감옥에서 보내야 한다면, 그 사람의 정신은 어떻게 되겠습니까. 온전할 수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다산의 상황은 그 아들들에게 폐족(廢族)이라고 얘기할 만큼 상황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가 스스로에게 지지 않은 까닭은 어디에 있겠습니까. 선비 정신입니까?
선비라고 다 같은 선비는 아닙니다. 전 그 사람의 됨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적당히’라는 것을 모르는 선비였습니다. 이런 일화도 있습니다. 정조대왕이 다음날 토론을 할 서책의 내용을 다산에게 전해 주었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그것은 반칙이라면서, 거부했다고 하죠. 그다음 날 다산은 준비 없이도 잘 해내었고, 정조대왕이 그런 다산을 보며 탄복했다고 합니다. 여기서 정조대왕의 탄복은 두 가지로 나뉠 것입니다. 그의 ‘정직함’과 ‘영특함’일 것입니다. 정조도 영특하다고 소문난 뛰어난 인물이었지만, 다산은 그를 뛰어넘은 모양입니다.
아무튼 영특과 거리가 먼 저로서는 ‘부럽다’는 말만 할 뿐입니다. 저는 영특함이 없으니, 다신의 정직함만이라도 본받으려고 노력해 봅니다. 정직보다 적당한 속임수와 요령이 삶을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겠지만, 그런 삶을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오늘의 위정자들이 다산의 정신을 닮고, 또 닮으려고 노력한다면, 우리의 상황이 오늘처럼 혼탁하지 않을 것입니다. 오늘 다산 같은 사람보다, 나라를 송두리째 팔려 했던 을사오적과 같은 인물들이 넘쳐나니 문제입니다. 정치·종교·학계 모두가 한목소리로 제 이익만 찾으려고 시끄럽습니다. 소란스러워 통 잠을 못 이루겠습니다.
2018년 9월 17일 시 쓰는 주영헌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