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거소감

음력 시월 보름, 전국의 선원에서 동안거에 들어갔다. 안거(vassa, 安居)는 남아시아의 고행자들이 유행하기 어려운 몬순 기간 동안 마을 근처 작은 숲에 머무르는 관습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불교는 하안거 외에도 동안거를 실시하는데, 안거 숫자는 종단의 선출직에 출마할 수 있는 자격이 된다고 한다.
안거가 기후라는 조건으로 인해 유행할 수 없을 때 행하는 것이라면 유행하며 생명을 유지하지 않으며, 탁발을 금지한 한국불교에는 안거가 필요하다고 할 수 없지 않을까 싶다. 선원에서 용맹정진하는 것은 필요에 따라 하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거를 많이 드는 것이 훌륭한 수행자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평생 선방에서 참선하는 것이 진정한 불교인지 궁금하다. 불교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고 어느 정도 그것을 채워 설법할 수 있고 다른 이들을 지도할 수 있을 때 졸업을 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물론 평생 선방만 다니는 수행자도 필요는 할 것이다. 넓은 개념에서는 필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조건이 충족될 수만 있다면 평생 기도만 하거나 평생 공부만 하는 것처럼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선방이고 실내에서 참선한다. 선방은 비나 눈 한파 등을 피할 수 있으니 기후와 별 관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은 경제적 안정을 이룬 뒤에 자급자족이 이뤄지고 있으므로 어디서건 늘 안거를 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뿐만 아니라 남아시아 이외의 지역에서도 안거를 한다. 현대 중국이나 대만에서는 우리와 같은 동안거는 하지 않는다고 한다.
현실은 안거가 따로 필요 없는 세상이지만 안거에 들고 결제 해제 법어를 내린다. 안거에 들어 생사를 뛰어넘는 용맹 정진을 통해 중생을 구원하는 분들이 등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분들이 교계 안팎의 난국을 해결하고 고통 속에 빠진 중생을 잘 건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종단이 시끄러울 때마다 선원의 선자들이 앞장선다고 하나 흐지부지 되는 예도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분들도 하나의 단체로 비칠 때가 적지 않다. 안거의 전통이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날은 안거해야 할 환경이 아니라고 한다면 안거는 평소에 아침저녁이나 휴일에 해도 되지 않을까. 안거를 해야 불교를 더 잘 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지도 판단하기가 쉽지는 않다.
안거보다 중요한 것은 평소 공부가 아닌가 한다. 안거를 자주 들지만 세상에 살면서 세상과 동떨어진 문화와 감각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지, 선사들이 몇 권의 가벼운 책을 내서 인기를 얻는 것이 중생의 구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모를 일이다. 우리만의 불교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안거 문화는 재고될 필요가 있다. 안거가 훈장처럼 되는 것은 생각해 볼 일이다.
결제 해제도 좋지만 평소의 안거로 단월을 평안으로 이끌어가는 것이 진정한 안거의 효과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불교의례의 대본인 의문에는 선관(禪觀)이 가득하다. 하나 그것이 송주로만 활용될 때가 적지 않다. 불교의례는 근원적으로 관상(觀想)으로 진행돼야 한다. 범음으로 될 때는 칭명할 때와 아뢸 때이다. 부르고 공양하고 하는 것 등은 관상으로 진행돼야 한다.
참선은 달리 하는 것이 아니고 유심소작 마음을 잘 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운심공양이라고 하지 않는가. 심상을 그리는 것은 마음을 비우고 쓰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외경에 흔들림이 없어진다. 화두수행이 좋다, 위빠사나가 좋다 하는 것은 구취 나는 언설들이다. 마음자리 하나 제대로 못 쓰면서 분별하고 간택하는 것은 불교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동안거가 시작되었다. 전국의 선원은 눈 푸른 납자들의 정진열기로 가득할 것이다. 그들의 정진이 자신의 완성과 타자의 완성에 도움이 되려면 그들의 정진 이상으로 대상에 대한 관념적인 이해가 아니라 실제 대상과 함께하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마음만을 논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상 많은 수행자와 출가자를 만나는 것이 너무 쉽지 않나 한다.
안면에는 오만상을 연출하고 자비는 고사하고 경계심만 가득한 수행자와 지나치게 되면 슬퍼지곤 한다. 세상 사람들은 하지 않는,  지나치게 큰 옷을 입고 거만하게 거리를 휘젓고 다니며 몸을 비틀어 찻집에 앉아 있는 모습들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구용구사가 있다. 아홉 가지 자세와 아홉 가지 생각하는 법이다. 자고로 수행자는 위의가 바라야 한다.
노는 입에 염불한다고 하였듯이 일 하지 않을 때는 나를 비워야 한다. 선방에 앉아야만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면 평소 어디서든 일 없을 때는 나를 비우고 내려놓는 것이 진정한 안거 정신일 것이다. 동안거 잘 하고 나오는 수행자가 많아지고, 자비심 가득해지는 출가자가 많아지기를 바란다. 불교 하는 이라면 출가법사스님이든 재가거사든 늘 안거해야 한다.
떠남 없는 떠남, 결제 없는 결제!
2019.11.12. 09:00
글, 우천 이성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