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빛 아래 비치는 흐릿한 모습
팔십 세의 내 늙은 시력을
안타까워하다가
돋보기 쓰고 가까이 다가가니
처음 보는 그 얼굴의 주름살이여.
중도 아닌 것이, 속인도 아닌 것이
그래도 삼십여 년 불경을 뒤적였네.
부처보기, 사람보기 부끄러워라.
중도 아닌 내가, 속인도 아닌 내가."
'모월모일(某月某日)' 김달진(1907~1989)
1933년 늦가을, 당시 스물여섯, 집을 나서 금강산 유점사로 향했다.
"나는 오늘 그리도 애지중지하던 머리를 깎아버렸다. 구렁이같이 흉스러운 내 자신의 집착성에 대한 증오의 반발이었다. 그리고 장삼을 입고 합장해보았다. 외양의 단정은 내심의 정제에 적지 않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겸손과 하심(下心)―얼마나 평안하고 화평한 심경인가?"
<산거일기(山居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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