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인생역정에서 결정의 순간이 있을 것이다.
그 순간 얼마나 신속하고 정확했나를 돌아보며 후회도하고 안도도 하게 되는데 그런 면에서의 나는 대체로 몇 단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스스로 다니던 학교를 때려치우고 중이 되어 도를 닦겠다고 결정을 내린 일이였다.
큰스님의 허락으로 초가집에 아궁이 불을 때던 법수선원에 첫발을 디디고 초발심자경문과 염불을 배우며 행자생활을 하던 시절.
그때는 본의 아니게 정신병원에 끌려가 정신 상태를 점검받기도 해야 했다.
“저러다 어린나이에 중노릇도 못하고 도로 집으로 돌아오면 퇴학당해 있을 학교는 어떻게 하냐,,,,, 일 년짜리 정신병원의 진단서가 있으면 휴학이 가능하다하니 그 진단서를 끊어 학교에 제출하자,,,,,”는 주위 노파심 지긋한 보살님들의 등쌀에 못 이겨 어쩔 수 없는 동행이었지만 그때의 그 정신과의사와의 어눌한 대면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어허,,,, 삼계의 대도사가 되겠다는 나의 정신 상태를 의심하다니,,,,,,” 참으로 기가 막히고 가소로운 일이였다.
그리고,
“천둥소리에 춤을 추고 싶으냐?”
“어머니를 갑자기 때려죽이고 싶은 충동이 일 때가 있느냐?”는 등등의
의사가 내민 설문지의 문항을 받아든 그 황당함이라니,,,,,,
산에서 나무하다 낫질을 잘못하여 난 손등의 상처를 난동부리다 입은 상처로 의심하던
그때 그 홍 보살님과 친분이 있던 정신과의사는 그나마 부탁에 못 이겨 한 달자리 진단서를 끊어주었다 한다.
그것을 보현성보살님이 학교에 제출하니 담임이신 지리 선생님이 그것 가지고는 휴학이 안 된다고 하시면서 성적으로 봐서는 새로운 진로를 잘 선택했는데 나하고 한마디 상의도 없이 절로 들어갔다는 데에 못내 서운해 하셨다한다.
“참,,,,, 선생님도,,,, 그때 저의 성적이 그랬습니까?”
하기는 허구한 날 노트에 “도가 무엇인가, 도가 무엇인가”를 반복해 쓰며 수업시간을 보냈던 기억으로 보아 칠판강의가 귀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되었던 그 일로 “지금은 도를 이루어 행복하냐?”는 자문에는 나만의 비밀스러운 만족도를 가지고 있지만은 그때 결행한 출가는 지금도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의 결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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