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정초 성지순례 가는 날이다.
날씨는 이미 따뜻하나 오대산 보궁 오르는 길은 아직 잔설이 남아 있을 것 같아 보온성 옷을 준비해야 할 터인데 어련히 알아서들 준비하시리라 믿는다.
외부온도를 체온으로 맞추어 조절하는 개구리 두꺼비 같은 양서류와 달리 체온조절기능이 없는 인간은 걸치는 옷으로 그 기능을 대신한다.
추운 겨울을 지탱해주었던 기능성 옷을 벗어 던지고 울로 된 봄가을용 니트를 꺼내 입었다.
몇 년 전 어느 보살님이 승복 안에 입을 적당한 사이즈의 옷이 없어 불편해 하는 나를 보고
사주셨던 “Missoni”라는 메이커 옷이다.
이 옷이 춥지도 덥지도 안은 이때쯤 걸치면 가장 빛을 발하는데 구도자의 松落草衣와는 너무 괴리한 워낙 고가의 옷으로서 모르겠거니 슬쩍 입어보나 모든 사람들이 이미 다 알아본다.
"동다송(東茶頌)"의 저자 초의선사는 위로 연잎 옷이라는 뜻의 하의(荷衣)와 명주옷이라는 뜻의 호의(縞衣)라는 법호를 가진 둘의 사형을 두고 있는데 스승 완호윤우(玩虎倫佑)스님은 불법전수의 상징인 의발전수의 맥을 상기 시키려 옷衣자를 돌림으로 넣어 지으셨으리라 미루어 짐작된다.
그중 구도자의 무위자연을 연상케 하는 이름 초의(草衣)는 자경문의 “송락초의차색신(松落草衣遮色身)”이라는 구절로 더욱 친밀감이 가는 이름이다.
“송락과 풀 옷으로 몸을 가려라”해서 각화사 동암에 살 때에는 실제로 송락을 채취해보기도 했었다.
깊은 산 오래된 소나무의 높은 가지에서나 척척 늘어진 송락을 만날 수 있는데 그 고무줄 같은 스판기능이 옷의 소재로 충분하다는 생각에 옛 선사들의 지혜에 탄복했던 기억이 난다.
그 시절에는 걸망하나의 단출함이 좋아 여름에는 겨울옷을 겨울에는 여름옷을 방치해버렸었다.
그러니까 계절 바뀔 때 마다 항상 궁색한 것이 오히려 더 낭비라는 생각에 요즈음은 계절마다의 옷을 잘 챙겨 두고 있다.
그러다가도 다시 걸망하나로 다 정리해버리고 싶은 생각이 문득문득 들지만 그럴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잘 참고 있다.
고려 野雲 禪師의 自警文 게송을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菜根木果慰飢腸
(채근목과위기장하고)
풀뿌리 나무 열매로 주린 창자 달래고
松落草衣遮色身
(송락초의차색신이니)
송락 풀 옷으로 몸을 가리네
野鶴靑雲爲伴侶
(야학청운위반례하고)
노니는 학과 푸른 구름 벗 삼아
高岑幽谷度殘年
(고잠유곡도잔년이어다)
높은 뫼 깊은 골에서 여생을 보내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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