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정사가 청양신문에 소개 되었네요.>
남양면 신왕리 화정사 가는 길
마음 정갈해지는 산책길
[867호] 2010년 08월 30일 (월) 10:46:38 청양신문 기자 webmaster@cynews.co.kr
▲ 벼와 같이 익어 가는 연꽃.
초입, 골목길에 뚝뚝 떨어진 능소화의 꽃잎이 황홀한 길을 만들어 놓았다. 꽃이 진다는 것은 아름다움의 소멸이 아니라 ‘완성’이라고 이 꽃길보다 화려한 시인은 읊었다. 낙화는 닫힘이 아니라 새로운 열림을 의미한다는 뜻이라는데 과연, 이 가냘픈 길이 동화책의 한 삽화처럼 벌겋게 들떠 오른다. 이젠 영글기만 하면 되는 벼이삭이 푸르게 고개를 숙이고, 여름에게 지지 않으려는 듯 더 이상 붉을 수는 없다는 듯 강하게 고추가 익어가며, 폭우가 지나간 자리 옥수수는 쓰러진 채로 단단해지고 있다.
▲ 꼬불꼬불 비포장 길.
햇살에 눈부신 나뭇가지 하나하나, 나뭇잎사귀 한 잎 한 잎이 반짝이는 베일에 둘러싸여 무지갯빛을 내뿜고 있다. 나무 뒤에 숨듯이 있는 조그마한 돌탑을 몇 무더기 지나친다. 누군가는 다칠 때마다 업보가 하나씩 해결되는 것 같아 속 시원하다 하였는데, 또 다른 누구도 혹여 그러한 마음으로 이 탑을 쌓은 것은 아닐까? 아니면 얽힐 대로 얽혀버린 삶, 대책 없는 인연을 한 올 한 올 푸는 심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뜨겁고 날카로운 햇살도 감히 근접하지 못하는 물 얕은 계곡에 손을 뻗는다. 손등이 살랑거리며 금방 푸른빛 도는 나뭇잎이 된다. 남이 좋은 감정으로 나를 바라봐줄 때 행복호르몬이 왕성하게 나오는 것처럼, 나무와 바람과 공중을 떠도는 뭍 소리와 이 정다운 물결로 인해 가만히 있어도 한동안 많이 행복하다.
좁은 길 끝으로 환하게 ‘화정사’가 눈에 들어온다. 초록색 적막 아래로, 그리움에 지쳐 꽃 지고 나면 그때서 잎이 나온다는 상사화가 질펀하게 피어있다. 꽃이 그러한 만큼 잎도 그리워하리라는 것을 먼저 간 꽃은 알기나 할런지. 문득, 꽃의 마음이 되어 울적해지는데, 멀리서 논에 들어 앉아 피어있는 연꽃이 생소하면서도 은근하게 마음을 가져간다.
산들바람처럼 소리 소문 없이, 바람에 날리는 먼지덩어리처럼 그렇게 이 길을 걸어보라. 푸르러지기 위해 살아가는 나무처럼, 안간힘을 다해 여름을, 땡볕을 빨아들이는 저수지. 건너편 작은 소나무를 끌어안기에는 너무 긴 여백을 아쉬워하는 듯한 풀넝쿨의 순수한 푸름이 아름답다. 쉼 없이, 그러나 조용히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기다리기 위해 기다리듯이, 기다림 자체를 기다리는 듯한 그 모습이.
프리랜서 김현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