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조성이 앙증맞은 보리암의 관음상은 주변의 바위군상들을 벗 삼고 시원스런 남해를 전망삼아 앉아계셨는데, 상념에 잠긴 표정이 사뭇 신비로웠고 영험을 숨기고 있는 듯 신통방통해 보였다.
또한 군살 좀 빼고 오라는 듯 암벽사이로 길을 좁게 내어 순례자의 가슴을 뜨끔하게 했던 향일암은 법당소실의 아픔은 진즉 털어낸 듯 오밀조밀한 도량엔 기둥 깎는 소리만 요란했다.
일박으로 떠난 간만의 남도순례.
이렇게 두 발꿈치 같이 한국을 버티고 있는 관음성지가 순례의 목적지였지만 덤으로 얻을 수 있었던 것은 용문사 차밭의 싱그러움과 별밤지기로 보낼 수 있었던 신월정사에서의 일박이었다.
남방불교의 개요는 두 스님의 얼굴에 그대로 쓰여 있어 굳이 별도의 용씀이 군더더기라 생각되었고 그래도 우리 일행은 멀리 섬진강변으로 눈길을 떨군체 옛 석가의 근본의단을 떠올리며 몸을 틀어 좌정에 들었다.
붓당 사라낭 갓차~미.
담망 사라낭 갓차~미.
상강 사라낭 갓차~미.
새벽예불 후의 이른 조찬은 꿀맛이었다.
날이 밝자 눈에 들어오는 도량을 살피며 악조건하에서의 불사원력에 감탄하고
우리는 사띠사띠 굽은 길을 내려와 여수로 향하며 짧은 일정의 아쉬움을 토로했다.
가을 들녘의 남도정취는 순례자의 일상복귀를 망설이게 할 정도였지만 일행은 계획대로 일정하게 떠밀리고 있었고, 그 중에 불국화님과의 조우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법해심님의 아우답게 그 성격이 매우 진취적이고 사교적이었던 님은 옥천사 신도회장직을 맞고 있는데 법수 홈의 열혈광팬이기도 하다.
차에 실어준 마대 한 자루의 밤은 지금 법수선원 뜰에서 쪄지고 볶아지며 많은 사람들의 입을 즐겁게 하고 있어 다시 한 번 감사함을 전한다.
마지막으로 답사한 논산 쌍계사의 법당은 핸드메이드의 정석을 보여주며 문화재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듯 옛 선인들의 솜씨를 맘 것 뽐내고 있었고, 법수선원으로 출가한 주지 성파스님은 모두를 친정식구처럼 대하며 반가워했다.
쌍계사의 법당은 그야말로 작품이었고 문외한의 눈으로도 감탄을 자아내기에 충분했으며 금번순례의 피날레라 할 수 있었다.
아쉽지만 일박의 여정은 이렇게 끝이 났다.
동참대중 모두 수고 많으셨고, 벌써 다음 봄 순례가 기다려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