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인사는 퇴설당을 선방으로 쓸 때가 좋았다.
위로 조사전과 그 아래로 선열당이 있어 각각의 정진시간이 달랐는데
보통 조사전이 열두 시간, 퇴설당이 열 시간, 선열당이 여덟 시간이었다.
이렇게 한 선방이면서 각 채마다 정진시간을 달리해 근기별로 방부를 받았다.
사실 정진시간을 열두 시간으로 잡으면 수면시간은 네 시간으로 줄고 공양 후 포행시간내기도 힘든 빡빡한 하루일정을 보내게 된다.
상대적으로 선열당같이 한량하면 여유가 있어 말 그대로 법의 희열과 선의 열기를 즐기듯 유유자적할 수 있어 좋다.
나는 몇 번의 안거를 선열당에서 보냈는데 그 때마다 퇴설당의 편액을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곤 했던 기억이 있다.
퇴설(堆雪)이란 혜가의 입설단비(立雪斷臂)를 떠올리며 눈은 밀쳐두고 앉아 정진하라는 말이니 그 이상 서늘한 경책어는 없었던 것이다.
돌연 눈밭에 앉아 팔 짜름 대신 코피라도 터트려 흰 눈을 붉게 물들이고 싶은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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