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은사

(2) 성수스님
인자한 모습 속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신 지남(指南)

▲ '산소리'를 강조하며 늘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 이 시대의 선사 성수스님.


‘삶이란 무엇인가?’ ‘도란 무엇인가?’ 중학생이던 내가 가지고 있던 의문들이다. 당시 어머니는 상도동 백운암에서 참선수행을 하고 계셨다. 어머니의 권유로 백운암을 찾았고 거기서 성수스님을 처음 뵈었다.

그렇게 참선을 하며 스님의 가르침을 접했고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하지만 고등학생이 되어서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출가를 해야만 이 의문이 풀릴 것 같았다. 백운암에 찾아갔지만 성수스님은 안 계셨다.

스님이 계시는 곳을 수소문하니 법수선원에 계신다고 했다. 당장 법수선원으로 달려갔다. 스님을 뵙고 출가하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때가 1974년이었다. 출가를 하고 스님 문하에서 공부를 시작했다.

성수스님은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몸소 실천하신 분이었다. 목소리를 높여 야단치신 적도 없다. 그저 묵묵히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인자하신 모습 속에 수행자의 옹골참이 가득차신 분이다. “산소리를 해야 한다”며 늘 강조하신 스님은 조사어록을 인용해 말씀하신 적도 없다. 당신이 경험하지 못한 일을 말로 옮기는 것은 스님 말씀에 의하면 ‘헛말’이었다. 때문에 스님은 오직 당신의 경험만을 말씀하셨다.

출가한지 얼마 안 된 사미였을 때의 일이 새록새록 생각이 난다. 어느 날 들어본 피리소리가 정말 곱고 좋았다. 나도 배워야겠다 싶어 악기상을 찾아가 단소를 하나 장만했다. 소중히 들고 온 단소를 본 성수스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단소를 달라하셨다. 단소를 건네기 무섭게 성수스님은 돌을 들어 단소를 부숴버렸다.

“수행자가 풍류를 즐길 시간이 어디 있나! 이 일이 더 급한 일인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스님께서는 풍류나 잡기에 일절 손대지 않았다. 풍류나 잡기뿐만 아니라 스님은 차를 마시는 것도 싫어하셨다. 차 마시고 앉아있는 자체를 한가로운 일이라고 경책하셨다. 할 일이 없으면 좌복 위에 앉아계시던 성수스님은 그 모습 자체로 늘 참선하라, 수행하라 경책하신 셈이다.

스님은 화두를 주신 적이 없다. ‘근본의단(根本疑團)’이 곧 화두였다. 또한 스님은 선법의 대의를 불살생과 연계해 가르침을 주셨다. 왜 불살생인가. 생로병사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곧 자기를 방치하고 윤회에 들게 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살생이라는 것이다.

깨닫지 못해 윤회하면서 생로병사를 겪게 하는 것은 곧 자신을 죽이는 일이요, 그것이 가장 큰 살생이기에 불살생계를 지키려면 정진해서 깨달으라고 가르치셨다. 단순히 나 아닌 다른 생명을 귀이 여기는 것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스님께서는 늘 강조하셨다. “윤회를 방치하면 살생이라고.”

스님은 항상 소식을 하셨다. 포식하는 일은 평생 없으셨다. 정해진 시간에 정갈한 반찬 몇 가지를 놓고 하는 식사는 스님에게는 수행이었다.

연세가 드시고 나서는 식후 낮잠이라도 주무셨으면 했지만 그 또한 없었다. “낮잠 자면 뱀 된다”는 말씀으로 제자들이 그러는 모습 또한 허락지 않으셨다. 눕는 것도 수행자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하셨던 스님은 말로만 제자들을 일깨우신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늘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말없는 경책은, 행동으로 보여주는 경책은 스님을 보는 모든 이들에게 해주는 법문과도 같았다.

스님은 걸음을 걸을 때도 조용하셨다. 생전 뛰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스님은 “땅을 꽈악 누르며 걸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불자들을 대하실 때도 어려운 말씀은 일절 하지 않으셨다. 무조건 알아듣기 쉽게 말씀해주셨기에 스님을 따르는 불자들이 더 편하게 불교에 녹아들지 않았을까.

제자들과 불자들에게 편안하게 가르침을 주셨던 스님은 정작 당신은 평생 구도열기로 사셨다. 젊어서는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묻고 배우며 치열하게 정진하셨다. 1945년의 일이다. 스님은 해인사에서 일주일을 한도로 반드시 깨치겠다 약속하고는 공양주 소임 같은 것을 일절 맡지 않은 채 퇴설당 앞마당에서 용맹정진을 하셨다고 한다. 당시 방장 효봉스님 앞에서 호언장담했던 스님은 딱 일주일 만에 ‘천하만물이 무비선이요, 세상만사가 무비도로다(天下萬物 無非禪 世上萬事 無非道)’라는 게송을 읊었다. 이 게송은 스님의 오도송으로 인정받았다. 스님께서는 법문 끝에 항상 이 게송을 읊으셨다.

그런 기운이 깃들어서일까. 스님의 말씀은 조용하면서도 강한 힘을 지니곤 했다.

스님은 평소 세 가지를 강조하셨다. “헛말 하지 마라, 헛걸음 하지 마라, 헛일 하지 마라.” 여기에 덧붙이실 때는 육바라밀 이야기를 해주셨다. “육바라밀이란 곧 눈바라밀, 코바라밀, 입바라밀, 귀바라밀, 손바라밀, 발바라밀이니 경거망동하지 말고 온몸에 바라밀행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가르치셨다.

은사스님을 가장 오래 시봉한 분은 맏사형인 태응스님이다. 산청 해동선원에 머물고 계시는데 태응스님은 스님의 임종을 지킨 분이다. 활산문도회 대표를 맡고 있는 분도 바로 태응스님이다. 태응스님 다음으로 은사스님을 오래 시봉한 분이 지금은 입적하신 시현스님이다. 그 후 스님과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 바로 나다.

태응스님은 은사스님의 입적을 지켜보고서 스님께서 춤을 추셨다고 했다. 비록 누워서였지만 팔힘이 좋으셨던 스님은 팔로 덩실덩실 춤사위를 보여주셨다. 태응스님은 스님의 춤사위가 무애가라고 말씀했다. 평소 원효스님을 숭상했던 스님이 이생의 마지막에서 보여주신 것이 바로 원효스님의 무애가였다는 것이다. 그렇게 스님은 마지막 가는 순간에도 깨달음의 가르침을 주셨다.

스님의 임종게는 제목이 ‘수거풍래(水去風來)’다. ‘물이 흘러가니 바람이 불어오네.’ 이보다 더 간결하고 큰 가르침이 또 어디 있을까. 오도송도 임종게도 늘 가슴 속에 들어있다.

요즘 도박이니 뭐니 해서 불교의 위상이 땅에 떨어졌다. 은사스님께서 이 모습을 보셨다면 아마 모두 당신 허물이라고 하셨을 거다. 남 탓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하지만 스님께서는 다른 스님들이 문제를 일으켰을 때도, 종단에 문제가 생겼을 때도 “모든 게 곧 내 허물이요, 내 부족”이라고 하셨던 분이다. “남의 허물을 들춰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저들이 잘못이라고 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와 다를 바 없다”는 스님의 말씀은 곧 제자들에게도 귀감이 됐다.

이제 곧 스님이 입적하신지 2주기가 된다. 입적 후 유고집을 냈고 부도도 통도사에 안치했다. 부도탑비를 모셔야 하는데 이것은 문도대표인 태응스님이 준비하고 있다.

스님께서는 불법의 핵심이 신해행증(信解行證)에 있다고 말씀하셨다. 믿고 이해하고 행동하고 증득하는 것. 모두 스스로 해야 할 것들이다. 가르침을 듣는 것에서 끝내지 말고 행주좌와(行住坐臥)에 접목해 내 공부를 하라는 은사스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아 매일 그렇게 정진한다. 법수선원 신도들도 은사스님의 가르침대로 정진하고 있다.

스님께서는 새 땅에서 새 인물이 난다고 하셨다. 때문에 해동선원, 황대선원 여기 법수선원에 이르기까지 전국에서 새 터전을 찾아내시고 새 도량을 일구셨다. 옛 터전은 기가 쇄진했기 때문에 탁 트인 공간에 새 도량을 열어 치열하게 정진해야 한다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셨다. 그래서 법수선원에서도 선방을 열고 싶지만 이곳은 일체 건축이 불가능한 지역이다. 내가 인연이 닿은 곳은 충남 청양 화정사다. 아직 불사 진행은 하지 못하고 있지만 일 년에 한 번은 법수선원 신도들이 수련회를 가서 열심히 정진하는 곳이다. 은사스님께서도 화정사를 정진하기 참 좋은 터라며 좋아하셨다. 앞으로 인연이 닿는 대로 불사를 해 번듯한 선방을 열어 정진할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은사스님의 유지를 잇고자 하는 내 원력의 하나다.

-영주스님/법수선원 주지

<불교저널 기사 모셔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