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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 武人時代의 불교 - 요세와 백련사- 에 대하여

    글쓴이 : 김상규  (220.♡.40.2) 날짜 : 2023-09-30 (토) 22:34 조회 : 199
    최종 2023 년 9월 법수선원 불교 교리 공부.hwp (64.0K), Down : 1, 2023-09-30 22:34:44
    삼보에 귀의합니다.

    유난히도 더웠던 여름철을 보내고  전형적인 가을을 맞이하면서
    즐거운 추석 명절 연휴를 보내고 있습니다.
    황금의 연휴가 끝날 때까지 안정하게 잘 보내시기 바랍니다.

    2023년도 9월의 불교  교리 공부 자료를 위 제목과 같이
    붙임과 동시에 요약하여 올립니다. 

    필요한 불자님들께서는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김상규 (220.♡.40.2) 2023-09-30 (토) 22:58
    ● 고려 무인시대의 불교

    1. 요세(了世)와 백련사(白蓮社)
      (1) 천태종의 백련 결사(白蓮結社)는 요세(了世, 1163∼1245)가 시작하였다. 요세는 신번현(新繁縣, 합천 지
          역)의 호장(戶長) 집안 출신으로 12세에 고향의 천태종 사찰에서 출가한 후 23세 되던 1174년(명종 4)에
          승과에 합격하였다.
      (2) 그 후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며 천태학을 수학하던 중 1198년(신종 원년) 개경의 고봉사(高峯寺)에서 개최
            된 법회에 참석하였다가 실망하고서 뜻을 같이하는 동료와 함께 신앙결사를 만들 생각을 하였다.
      (3) 이때 팔공산에서 정혜 결사를 시작한 지눌이 그에게 글을 보내어 참여를 권유하자 동료와 함께 참여하여
          참선 수행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참선 수행으로 만족하지 못하여 지눌이 송광산으로 옮길 때에 동행하지
          않았으며, 1208년(희종 4) 월출산에 머물 때에 문득 “천태의 묘해(妙解)에 의지하지 않으면 수행의 120병
          (病)을 어찌할 수 없다.”고 한 영명 연수의 말을 생각하고서 천태의 법화 신앙에 의한 수행을 결심하였다
      (4) 이후 근처의 만덕산(萬德山)으로 옮긴 그는 1216년(고종3)에 백련 결사를 결성하고  1239년(고종19)에는
          그곳에 보현 도량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천태 신앙에 기초한  결사 운동을 전개하였다.
      (5) 백련 결사는 천태종의 법화 신앙과 정토 신앙에 기초한 신앙 결사였다. 백련 결사의 중심이 된 보현 도량
          은 법화삼매를 닦아 정토왕생을 희구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였다.
      (6) 구체적인 수행법은 천태 지자가 스승인 남악 혜사(南岳慧思)의 가르침을 체계화한『법화삼매참의(法華
          三昧懺儀)』의 내용에 의거하였다. 요세 스스로 이에 의거하여 매일 선관(禪觀)을 닦는 여가에 『법화
            경』 전체를 독송하고, 준제다라니(準提陀羅尼) 천 번과 아미타불 만 번을 염송하며, 53체불(體佛)을 12
            번씩 돌며 전생의 업장을 참회하는 수행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실천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서참회(徐懺
            悔)’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였다.
      (7) 요세의 백련 결사는 천태 교학에 기초하면서 정토 염불 신앙을 중시하였는데, 이는 정토 신앙을 적극적으
          로 받아들인 북송대 천태종의 신앙 경향과 통하는 것이었다.
      (8) 요세는 지눌이 주재한 정혜결사에도 참여하였기 때문에 선에도 이해가 깊었지만 경전과 계율을 무시하고
          참선만을 하는 것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입장을 보였다.
      (9) 요세 이후 백련사는 제자인 천인(天因, 1205∼1248)과 천책(天頙 1206∼?) 등이 계승하여 발전시켰다. 천
          인과 천책 이후 백련사는 그 제자들이 계승하여 발전시키면서 수선사와 함께 무인집권기의 불교계를 대
          표하는 신앙 단체로서 위상을 확립해 갔다.

    2. 재조(再雕)대장경(大藏經)
      (1) 무인 집권기인 고종 18년(1231)에 몽골의 군대가 고려에 침략해 들어왔다.
      (2) 이 과정에서 고려가 겪은 피해는 막심한 것이었는데, 불교계로서는 특히 부인사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경
          판이 몽골군의 방화로 불타 없어짐으로써 현종대 이래 장기간에  걸쳐 행해졌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갔다.
      (3) 대장경이 의미하는 국가의 문화적 자존심을 고려할 때 이러한 사태는 간과할 수 없는 것이었으므로 곧바
          로 대장경을 다시 만드는 불사가 시작되었다.
      (4) 고종 24년(1237) 대장경을 다시 만드는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때 이규보가 국왕을 대신하여 지은
          「대장각판군신기고문(大藏刻板君臣祈告文)」에는 대장경을 다시  만드는 고려인들의 마음을 다음과 같
          이 표현하고 있다.
        ① 이런 큰 보배가 없어졌는데 어찌 일이 힘들다고 하여 다시 만드는 것을 꺼리겠습니
          까? 이제 국왕과 관료들은 함께 큰 서원을 발하여 담당 관청을 두고 일을 시작하려  합니다.(중략)
        ② 원하옵건대 부처님과 여러 천신들은 이 간곡한 정성을 굽어 살펴주십시오.
        ③ 신통한 힘을 빌려 주어 오랑캐들을 멀리 쫓아내어 다시는 우리 국토를 밟는 일이 없게 해 주시고, 전쟁이
            그치어 나라가 편안하며 국운이 만세토록 유지되게 해 주십시오.
      (5) 대장경의 재조(再雕) 작업은 담당 관청인 대장도감(大藏都監)의 관리 아래 판각작업은 주로 남해의 분사
          에서 이루어진 사유는.
        ① 남해섬은 대장경판의 재료가 되는 목재를 조달하기 유리한 지리적 조건을 가지고 있었고, 계속되는 몽골
            의 침략으로부터도 비교적 안전한 지역이었다.
        ② 뿐만 아니라 이 지역은 대장경 제작비용의 대부분을 담당하였던 무인집정자 최우와 그의 처남 정안(鄭
            晏)의 경제적 기반이 있는 곳으로 필요한 경비의 조달에도 유리하였다.
        ③ 최씨 정권은 최충헌 이래 진주를 중심으로 한 지역에 식읍(食邑)을 하사받아 자신들의 경제적 기반으로
            삼고 있었고, 하동을 본관으로 하는 정안 역시 남해섬에 많은  토지를 가지고 있었다.
      (6)  이러한 목록 작성과 교감 작업을 주도한 사람은 화엄종 승려인 수기(守其)였다.
          승통이던 수기는 불타버린 대장경의 인쇄본을 저본으로 하고 거기에 송나라 및 거란의 대장경, 그리고 그
          밖에 구할 수 있는 여러 판본들을 대조하여 최선본을 작성하였다. 이와 같은 여러 판본의 교정 내용은 그
          가 편집한 『고려국신조대장교정별록 (高麗國新雕大藏校正別錄)』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7) 완성된 대장경판들은 추가로 판각된 것과 함께 강화도로 운반되어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고, 고려가 몽
          골에 항복하여 개경으로 환도한 이후에도 계속 강화도에 보관되어 있던 대장경판은 조선 개국 직후인 태
          조 7년(1498)에 해인사로 옮겨 봉안되었다. 
      (8) 해인사에는 본래 고려의 실록 등을 보관하는 사고(史庫)가 있었는데, 조선 개창 이후『고려사』의 편찬을
          위해 고려왕조실록을 서울로 옮긴 후 비어 있는 사고에 대장경을 봉안한 것이다. 
      (9) 고려 대장경은 당시 사회에서 불교의 위상과 역할을 조망할 수 있는 중요한 유산으로 평가 받고 있다.
      (10) 한편 고려 말 청주의 흥덕사에서 백운 경한이 『불조직지심체요절(佛祖直指心體要節)』이란 책을 금속
            활자본으로 간행하였는데 이것은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금속인쇄본으로 평가되고 있다.
      (11) 백운은 역대 부처님과 조사들의 법어와 게송 등에서 선의 요체가 되는 것을 가려 뽑아 제자들에게 가르
            치기 위해 금속활자를 통해 불서를 간행하였던 것이다.
      (12) 이것은 통일신라시대 목판인쇄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함께 우리 선조들이 불교를 널리 알리기 위해
            매우 노력하였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고, 우리 선조들이 문화적으로 세계를 선도해 나갔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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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正覺 황윤호 (27.♡.179.71) 2023-10-04 (수) 13:27
    잘 읽어 보았습니다.
    ..... 정각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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