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수선원
법수산당
  • 불자마당









  •    2023 년 / 12 월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불자마당
    Home>법수산당 > 불자마당
    총 게시물 2,446건, 최근 0 건
       

    2023년 8월 -武人時代의 佛敎에 대하여-

    글쓴이 : 김상규  (220.♡.40.2) 날짜 : 2023-08-31 (목) 20:03 조회 : 219
    2023년 8월 법수선원 불교 교리 공부.hwp (94.5K), Down : 2, 2023-08-31 20:03:13
    불.법.승 삼보에 귀의합니다.

    2023년 8월의 불교 교리공부 자료를 별첨하여
    올립니다.

    그리고 요약한 자료는 본 난에도 올립니다.

    필요한 불자님들께서는 자료를 내려받으시면(download) 됩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4. 무인시대(武人時代)의 불교(佛敎) 요약
     
    1) 무인정권(武人政權)과 불교계(佛敎界)
      (1) 1170년(의종 24)의 쿠데타로 무인이 정권을 잡게 되면서 고려 사회는 크게 바뀌었다.  기존의 지배
          층인 왕실과 문인 관료의 영향력이 급격히 쇠퇴하고 그에 대신하여 무인이 새로운 사회 주도층으로
          등장하였다.
      (2) 지배층의 교체는 불교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기존의 왕실 및 문인 관 료와 연계하
          고 있던 수도 중심의 불교가 쇠퇴하고 대신에 권력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하고자 한 지
          방의 결사(結社) 불교가 대두되었다. 무인 정권은 결사 불교를  지원함으로써 민심을 안정시키고 정
          권의 정당성을 얻고자 하였다.
      (3) 무인 정권이 등장한 이후에도 기존 불교계는 한동안 세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왕실 및 문인
          관료와 밀접하게 연결되었던 이들은 수차례에 걸쳐 무인 정권의 타도를  위한 움직임을 보였고 그때
          마다 무인 집정자에게 큰 타격을 받았다.
      (4) 1174년(명종 4)에 개경의 승려 2,000여 명이 무인 정권을 타도하기 위해 나섰다가 진압  되었고)
          1202년(신종 5)과 1203년에는 경상도 지역 승려들이 지방민과 연합하여 무인 정권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다가 토벌되었다.
      (5) 1217년(고종 4)에는 침입해 온 거란군을 물리치기 위해 동원되었던 개경의 승려들이 도리어 집권자
          최충헌을 죽이려 하다가 수백 명이 죽임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은 과정을 거치면서 기존 불교
          계의 중심 세력은 거의 대부분 도태되었다.
      (6) 왕실 및 문벌 출신이 교단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화엄종과 법상종 세력은 크게 위축되었고, 선종과
          천태종에서도 중앙에서 활동하던 기존 중심 세력이 밀려나고 중앙의 권력으로부터 떨어져 있던 승
          려가 새롭게 종단을 주도하게 되었다.
      (7) 무인 정권기 불교계의 새로운 흐름은 지방에서 일어난 결사 불교였다. 개경을 떠나 지방의 조용한
          곳에 함께 모여 오로지 수행에만 정진하는 결사 불교는 무인 정권기 이전에도 있었지만 불교계 전체
          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존 불교계가 쇠퇴한 상황에서 결사 불교는 이제
          불교계의 새로운 구심점 역할을 하게 되었다. 
      (8) 당시의 대표적인 결사로는 화엄종의 반룡사(盤龍社)와 수암사(水嵓社), 법상종의 수정사(水精社),
          선종의 수선사(修禪社), 천태종의 백련사(白蓮社) 등이 있는데, 특히 수선 결사와 백련 결사는 기존
          불교계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신앙을 제시하면서 중심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2) 지눌(知訥)과 수선사(修禪社)
        ①  수선결사(修禪結社) 즉 수선사(修禪社는 보조국사(普照國師) 지눌(知訥, 1158∼1210)이 시작하였
              다.
        ②  1200년(신종 3)에 좀 더 넓은 곳을 찾아 송광산 길상사(지금의 송광사)로 옮기고는 입적할 때까지
            이곳에 머무르며 가르침을 폈다. 1205년(희종 원년)에는 산과 결사의 이름을 조계산과 수선사로
            바꾸었다.
        ③  수선사는 지눌의 제자인 혜심(慧諶, 1178∼1234)대에 크게 발전하였고 어머니의 죽
            음을 계기로1202년(신종 5) 지눌의 문하로 출가, 지눌이 입적한 이후에는 수선사의 제2세 사주가
            되어 스승의 가르침을 선양하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④  그가 사주로 있는 동안에 수선사의 명성은 크게 높아졌으며 후원자도 늘어났다. 지눌대에 수선사
              를 후원한 이들은 지방의 향리층이었지만 혜심대에는 왕실과 고위 관료가 주된 후원자였다. 특히
              당시 무인 집정자 최우(崔瑀)는 혜심을 신뢰하여 수선사에 후원을 많이 하였을 뿐 아니라 자신의
              아들들을 그 문하에 출가시키기까지 하였다.
        ⑤  이처럼 왕실과 고위 관료의 후원을 얻었던 혜심은 승과를 거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외적으
            로 1216년(고종 3)에 대선사라는 최고위의 승계를 받기도 하였다.   
      (1)  수선사의 사상 전통
        ①  수선사의 사상적 전통은 지눌의 가르침에 입각 하였는데, 그 내용에 대해서는 지눌의 비문에 다음
              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  지눌스님은 늘 사람들에게는 『금강경』을 읽으라고 권하였고, 가르침은 늘 『육조단경』에 의거
              하면서 이통현의 『화엄론』과 대혜 종고의 『어록』으로 보충하였다.
          -  수행법으로는 세 가지 방법을 제시하였는데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간화(看話)경절문(徑截門)이다.
        ②  지눌은 자신이 깨달음을 얻었던 혜능, 이통현, 대혜 종고의 사상에 의거하여 가르침을 폈고 이것이
            수선사의 사상 전통이 되었다.
      (2) 지눌이 구체적 수행법으로 제시한 삼문(三門)
        ①  성적등지문(惺寂等持門) : 혜능의 가르침에 의거하여 정혜쌍수(定慧雙修), 즉 정과 혜를 함께 닦을
            것을 이야기한 것이다.
        ②  원돈신해문(圓頓信解門) : 중생이 본래 성불한 존재라고 하는 이통현의 사상에 의거한 것으로 자
            신이 부처임을 깨닫자는 가르침이다.
        ③  간화경절문(看話徑截門) : 대혜 종고의 간화선으로 화두를 참구(參究)하여 단박에 깨달음을 얻는
            수행법이었다.

                                                                      2023년 8월 31일
                                                                      만산  김 상 규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