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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2년 5월의 불교 교리 공부 - 가야불교에 대하여-

    글쓴이 : 김상규  (211.♡.195.92) 날짜 : 2022-05-31 (화) 21:25 조회 : 80
    2022년5월분 법수 불교 교리 공부.hwp (66.5K), Down : 6, 2022-05-31 21:25:04
    삼보에 귀의합니다.

    2022년도 5월의 불교 교리 공부의 자료를
    별첨하여 올립니다.

    불자님들께서는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만산  김상규 올림

    김상규 (211.♡.179.200) 2022-06-11 (토) 18:24
    ● 가야의 불교 ........................................................................................... 페이지 126
      (1) 가야불교의 전래와 경로 
      ① 가야에도 불교가 전해졌지만 전래된 시기와 그 경로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삼국유사』에 수록된 「가락국기」에서는 가야 건국 직후에
          인도 출신인 수로왕의 부인 허 왕후와 함께 불교가 전래 되었으며, 현재 수로왕릉의
          앞  에 놓여 있는 파사석탑(婆娑石塔)이 그때 인도에서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
      ② 파사석탑은 재질이나 형태면에서도 한국의 다른 탑과는 구별되는데, 인도와 동남아시
          아지역의 불교문화권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③ 가야의 불교가 삼국과 달리 중국이 아닌 남방불교를 받아들였을 가능성도 있다. 하지 
          만 파사석탑이  만들어진 시기를 정확히 알 수 없으며, 가야불교에 대한 자료들도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데는 어려운 점이 많다.
      ④ 최근에 그 동안 미진했던 동남아시아지역과의 문화교류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 
          으므로 앞으로 가야불교에 대한 이해 또한 보다 더 진전될 수 있을 것이다. 
      (2) 가야 사회에 불교가 수용되었을 정황
      ① 첫째는 고령 대가야의 성문을 ‘전단문’이라고 하는바, 그 '전단'은 불경에 자주 나오는
          향나무의 일종이다.
      ② 둘째로 고령 고아동 벽화고분의 천정에 그려져 있는 연화문(蓮花文)은 부여 능산리
            벽화고분과 상통한 양식의 것이며, 이는 대가야가 불교를 이해하고 있었다는 방증
            자료가 될 수 있다.
      ③ 셋째로 대가야 시조인 이진아시왕의 어머니 이름이 불교의 팔정도(八正道)의 하나인
          ‘정견(正見)’이고 대가야의 마지막 왕인 도설지왕(道設智王)의 별명이 불경에 나오는
            ‘월광태자(月光太子)’이기 때문이다.
      ④ 이러한 사실들을 토대로 삼아 좀더 적극적으로 추정해 본다면, 마지막 시기의
          대가야는 불교를 잘 알고 있었으며, 약화된 왕권을 다시 세우는 명분으로 이를 이용하
          였을 수도 있다. 결국 이는 모두 실패하였으나, 이때 성립된 대가야 마지막 시기의 
          불교문화는 훗날 합천 가야산에 해인사(海印寺)가 세워지는 인연으로 작용하였다.
    ● 불교의 수용과 갈등 1) 고구려와 백제의 수용과 갈등
      ① 삼국 중 고구려와 백제는 불교를 받아들이는 데 있어서 별다른 갈등이 없었다.
      ② 고구려와 백제에서 별다른 마찰 없이 불교가 수용된 것은 4세기 전반에 이미 고대국가
            체제를 완성해 놓았다는 것을 반증해 주는 것이기도 하다.
      ③ 고구려와 백제가 이른 시기에 왕실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적인 통치체제를 정비하여
            일찍이 율령을 반포하고 국왕을 보좌하는 관료체제를 갖추었으므로 국왕이 불교를 
            수용 하려는 정책을 취했을 때 별다른 어려움 없이 이를 시행할 수 있었다.
     2) 신라의 수용과 갈등
      ① 신라에서는 이차돈의 순교사건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불교 수용을 추진하는 세력과
            반대하는 세력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었다.
      ② 신라의 경우에는 국왕의 불교 수용 의지에도 불구하고 귀족 세력들이 이에 반대하여
            불교 수용 정책이 쉽게 추진될 수 없었던 것이다.
      ③ 신라는 불교 수용이 늦어 527년(법흥왕 14)에야 이차돈(異次頓)의 순교를 계기로
            불교가 공인되었다.
      ④ 법흥왕은 율령을 공포하고 지방 제도와 중앙 조직을 개편하여 지방 세력을 중앙에 
          집중시키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 체계로서 보편적인 불교 원리를 수용하였다.
      ⑤ 불교를 공인한 법흥왕 때 율령이 반포되었고 지방 제도와 중앙 조직을 개편하여 
          지방 세력을 중앙에 집중시키면서 이에 걸맞은 새로운 이념 체계로서 보편적인 불교 
          원리를 수용하였다. 
      ⑥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는 등 관료체제의 기본 골격이 갖춰졌다. 또한 귀족의 대표로서
          상대등(上大等)을 두고 왕은 귀족들을 능가하는 초월적인 존재로 위상을 높이고자 
          하였다. 불교의 공인은 이처럼 왕의 권한이 강화된 시점에서야 비로소 가능했던 것 
          이다.                                                       
     2. 불교적 정치이념 ......................................................................... 페이지129     
     ● 전륜성왕(轉輪聖王                                                           
      ① 불교가 수용된 이후 삼국에서는 고대국가의 통치체제, 특히 국왕의 존엄성을 정당화
          하기 위하여 불교의 사상이나 이론을 정치이념으로 이용하는 모습들이 나타났다.
      ② 이러한 모습은 특히 불교의 수용과 고대국가 체제의 정비가 함께 이뤄진 신라사회에서
          두드러지지만 고구려나 백제에서도 불교를 이용하여 국왕의 권위를 높이려는 모습들 
          이 일부 보이고 있었다.
      ③ 불교의 정치이론을 현실의 정치이념으로 사용한 대표적인 예로서 전륜성왕의 이념을
          들 수 있다.
     1) 전륜성왕(chakravartin, 轉輪聖王)의 정치적 이념
      (1) 삼국에서 고대국가의 지배이념이었던 불교는 왕권의 강화에 기여하였다. 전륜성왕
          사상은 삼국시대 왕권의 정치적 지향을 보여주었다.
      (2) 전륜성왕은 불교에서 정법(正法, dharma)에 의한 통치로 이 세상에 이상 국가를 
          실현한다는 제왕이다. 전륜성왕 사상은 삼국에서 불교의 종교적 신성에 따라 왕의 
          권위를 높이는 이념적 기반을 마련하였다.
      (3) 전륜성왕은 산스크리트의 ‘바퀴’(cakra)와 ‘굴리다’(vartin)에서 유래된 세계적 통치자
          에 대한 고대 인도의 개념이다. 전륜성왕의 의미는 “다르마를 실천하는 왕, 다르마의
          바퀴를 굴리는 왕, 혹은 통치영역이 전 세계에 이르는 정의로운 왕”등으로 해석되며,
          불교에서는 “법륜을 굴리는 붓다의 세속적인 짝”으로 정의된다.
     2) 전륜성왕의 특징
      (1) 전륜성왕은 일반인과 다른 32가지의 신체적인 특징, 즉 32상(相)을 지녔고, 7가지
          보물, 즉 칠보(七寶)를 가졌으며, 4가지 신령한 덕, 즉 사령덕(四靈德)을 이루었다
          는 것이다.
      (2) 그리고 4종류의 군대, 즉 사병(四兵)을 거느리고, 사천하(四天下)를 다스리며, 
            1000 명의 아들을 두었다고 한다.
      (3) 전륜성왕은 정법(正法)으로 국토와 인민을 통치하는 이상적인 통치자이다. 전륜성 
          왕은 수미사주(須彌四洲)의 세계를 통솔하는 왕이며, 윤보(輪寶)를 굴리면서 사방 
          (四方)을 위엄으로 굴복시킨다고 하였다.
      (4) 전륜성왕이 세상에 출현하면 찬란한 금륜(金輪)을 비롯한 칠보(七寶)가 저절로 
          갖추어져 무력을 사용하지 않고도 천하가 정법(正法)으로 분열된 나라들이 하나로 
          통합되고 평화로운 세계가 건설된다고 믿었다.
      (5)『아육왕경(阿育王經)』등의 경전
        ① 본 경전에 묘사된 불교의 전륜성왕은 불법에 의거하여 세상을 통합하고,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며 불법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널리 불법을 전하고, 노년에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추구하는 존재였다.
        ② 전륜성왕이 출현하여 세상에 평화가 이루어졌을 때 내세 불인 미륵이 지상에서 성불
          하여 중생들을 구원한다고 이야기되었다.
      (6) 진흥왕의 이념
        ① 법흥왕을 계승한 진흥왕은 전륜성왕의 이념을 가장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군주이기도
            하였다.
        ② 진흥왕(眞興王, 미상~576)이 이처럼 전륜성왕이라는 이념적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은 가야를 병합하고 한강 유역과 함경도지역까지 영역을 넓혀 가던 
            그 의 팽창정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③ 자신의 정책을 단순한 정복전쟁이 아니라 분열을 통합하고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것
            이라고 명분을 세우고, 이 점을 불경에 묘사된 아쇼카 왕의 통치와 동일시했던 
            것으 로 보인다.
        ③ 진흥왕은 자신이 정복전쟁을 일단락 지은 후 새로 개척한 영토를 순행하면서 도덕에
            의한 통치로 백성들을 평안하게 하며 새로 편입된 지역의 백성들도 차별 없이 대할
            것을 선언한 순수비를 세웠다.
        ④ 진흥왕은 넓은 영토를 개척하고 안정된 통치기반을 확립하였으며 불교를 적극적으로
            신앙하였다는 점에서 불경에 나타난 전륜성왕에 부합되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신라왕실의 진종(眞種)의식 ............................................................. 페이지 131
      (1)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해 사용된 정치이론 중에 신라 왕실의 진종의식 이 있었다.
      (2) 진종이란 말은 불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원래의 의미는 인도의 네 계급 중 크샤트리야
          계급을 뜻한다. 크샤트리야(Kshatriya)를 한문으로 옮길 때에 발음을 따서 찰제리종 
          (刹帝利種)이라고 하거나 참된 종족이라는 의미를 부여하여 진종(眞種)이라고 번역했 
          으며, 여기에서의 종(種)은 신분이 아니라 혈족으로 이해되었다.
      (3) 신라의 왕실은 이러한 한문 번역어에 기초하여서 진종(眞種)을 부처님이 속했던 
          석가족과 같은 것으로 이해하고 자신들도 진종에 속한다고 주장하였다.
      (4) 진흥왕 이후 진덕여왕에 이르는 왕실에서 진(眞)이라는 글자를 붙인 왕호를 빈번하
          게 사용한 것도 이러한 진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또한 왕실을 진골(眞骨)이라
          고 하여 두품(頭品)을 갖는 일반인들과 구분하는 의식도 이 시기에 생겨난 것으로 
          이해되고 있는데, 이 역시 진종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5) 신라 왕실의 진종의식은 불교에 대한 신앙을 더욱 심화, 발전시켰다. 자신들을 석가
          족과 동일시하는 것에서 더 나 아가 부처님의 가족과 동일시하고 나중에는 국왕을
          부처와 같은 존재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6) 진평왕의 이름은 경전에 부처님 아버지의 이름으로 나오는 백정(白淨)이었으며, 
          진평왕의 형제들 이름도 부처님의 삼촌들 이름을 따서 백반(伯飯), 국반(國飯) 
          등이었다.  또한 왕비 이름 역시 부처님의 어머니의 이름인 마야(摩耶) 부인으로 
          불렸다.
      (7) 진평왕에게는 아들이 없어 딸이 왕위에 올랐는데 그녀의 왕호인 선덕여왕은 경전에
          나오는 동방세계의 부처의 이름인 선덕여래(善德如來)에서 유래한 것이었다.
      (8) 선덕여왕의 사촌 진덕여왕의 이름 승만(勝曼)은 『승만경』의 주인공으로서 장래에
          부처가 될 것을 약속받은 승만 부인 의 이름에서 딴 것이었다.
      (9) 신라의 경우 법흥왕은 ‘불법을 일으킨 왕’을 뜻하고, 진흥왕은 ‘진실로 불법을 일으킨
          왕’이라는 의미를 갖는 것으로 해석되며 이들은 말년에 왕위를 내놓고 출가하여 
          각기 법공(法空)과 법운(法雲)이라는 법명을 가지기도 하였다.
      (10) 법흥왕에서부터 진덕여왕에 이르는 시기의 국왕들은 모두 불교와 관련되는 
            왕호나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이 시기를 ‘불교식 왕명시대’라고 부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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