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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1년 11월 불교 교리 공부(중국에 불교의 전래)

    글쓴이 : 김상규  (211.♡.195.92) 날짜 : 2021-11-30 (화) 23:03 조회 : 214
    2021년 (11월분2-2) 11월분임, 법수선원 불교 교리 공부.hwp (356.0K), Down : 5, 2021-11-30 23:03:03
    삼보에 귀의합니다.

    2021년 11월의 불교 교리 공부에 대한 자료를 올립니다.

    10월의 자료에 이어집니다.

    자료가 필요한 불자님들께서는 자료를 내려받으시면(download) 됩니다.

    만산  김 상 규  합장

    김상규 (211.♡.195.92) 2021-12-01 (수) 23:05
    중국에 불교의 전래, 2021년 10월에 이어서

     3) 중국 최초의 사찰 '백마사(白馬寺)'와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
      (1) 백마사(白馬寺)의 유래
      ① 백마사는 중국에 불교 전래 후 국가에서 최초로 세운 산문사찰로 중국불교의
          발원지이다.   
      ② 낙양성의 동쪽 12㎞ 지점에 천년고찰로 백마사는 수많은 신비한 전설을 남기는데
          중국제일 고찰이자 불설 42장경이 보관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③ 중국후한(AD 25~220) 명제(明帝,58~75)의 감몽구법설(感夢求法說)에 의하여 명제는 채음(蔡愔)과 
          그의 제자 등을 인도로 보내 불경을 구하도록 했으나 인도로 가는 도중 서역(대월지국)에서 인도승(印度
          僧)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난(竺法蘭)을 만나 함께 한필의 백마와 42장경(四十二章經) 등 경전과
          불상을 싣고 중국으로 돌아왔다.
      ④ 백마는 얼마 되지 않아 지쳐 죽었다. 이에 황제는 낙양문 밖에다 백마의 공덕을 기리는 백마사(白馬寺)를
          짓고 이곳에 두 승려를 머무르게 하고 경전(經典)을 번역하게 했는데 그 경전이 42장경(四十二章經)이다.
      ⑤ 42장경은 중국에서 번역된 최초의 경전(經典)이요, 백마사(白馬寺)는 중국에 세원진  최초의 불교사원(佛
          敎寺院)이다.                               
      (2)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의 문제와 불교의 확대 
      ① 가섭마등과 축법란이 중국에 전한 최초의 경전은 '사십이장경(四十二章經)'입니다.
            42장경은 총 42장의 짧은 초기 경전 대목들을 모은 것임.
      ② 비법분경(非法焚經), 불교와 중국전통의 충돌
          불교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도교와 충돌함. 이를 흔히 '비법분경’ ' 즉 가르침을 비교해서
          경전을 불태운다.
      ③ 비법분경의 자세한 내용은 '불교통기의 권 35 명제, 법림의 파사론' 등에 기록되어 있음. 이에 따르면 가섭
          마등(迦葉摩騰)과 축란법(竺蘭法)이 중국으로 온지 4년이 경과하자 점차 불교의 영향력이 확대됨.
      ④ 이에 중국을 대표하는 5 영산 '태산, 화산, 형산, 항산, 숭산'의 도사들이 명제에게 불교를 배척할 것을 주
          청함. 그리고 불교와 도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우위에 있는지 가리는 대회를 황제 앞에서 해보자고 제안
          함.
      ⑤ 백마사 남문 앞에 불교와 도교 측에서 각기 단을 쌓아 성상과 성물, 경전들을 모셔놓고 기도를 한 뒤 불을
          붙여 타지 않는 쪽이 이기는 것으로 하자는 제안. 그 결과 불교의 단에서는 사리가 빛을 발하여 불기운을
          눌러 노랗게 변색될 뿐 타지는 않았음.  이 사건이후 불교 경전의 표지는 황색으로 사용하고 도교 경전은
          검은색을 사용함. 

     4) 전래 시기별 단계
        중국에 전래하여 발전되고 있는 중국불교는 대체로 다음의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1) 전역(傳譯)시대 : 전한(前漢)으로부터 동진(東晋)초까지 이르는 전역(傳譯)시대,
          불교가 전래되어 후한(後漢)의 안세고(安世高), 지루가참(支婁迦懺)을 필두로 많은 역경
          (譯經)승에의하여 경전이 전래되고 번역되어 나오는 시기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오로지 번역에만
          전념할 수밖에 없었으므로 아직 불교의 연구가 일반에게는 보급되지는 못했다.  소위 격의불교(格義佛敎)
          가 이 시기의 특징이었다.
     (2) 연구(硏究)시대 : 연구단계로서 동진(東晋)초부터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까지이다.   
          번역은 더욱 왕성 해지면서 본격적인 연구에 있어서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고, 강의도 성행하여 연구집단
          인 학파도 성립되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구마라집(鳩摩羅什)으로 역경에 있어서 전설적인 인물이며,
          법화경(법화경)을 위하여 무수한 대승경전과 용수(龍樹)의 “중론(中論)”과 “대지도론(大智度論)”등의 중요
          한 논서(論書)와 율장(律藏)을 번역 하였다.     
     (3) 건설(建設)시대 : 수(隨)의 초기에서 당(唐)나라 현종(玄宗)에 이르는 시기.
          건설단계로서 수(隋)와 당(唐)의 시대이다. 번역과 연구는 계속되면서 그간의 불전에 대한 가치 비판이 성
          행하였다. 소위 교판(제43문 참조)이 이 시기의 특징을 이룬다. 또 처음으로 종파가 성립됨으로                   
          써 다양한 종파들이 어깨를 겨룬 종파불교 시대로 접어들었다.
     (4) 계승(繼承)시대 : 수, 당의 불교를 명말(明末)에 이르는 계승(繼承)시대,
          송대(宋代),원대(元代)에 이르러 대장경(大藏經) 주인의 대사업을 통하여 불교에 계속적인 활력을 넣어
          수, 당의 불교를 계승하여 보급함과 동시에 점점 민간 종교로 발전하여 명대(明代)로 계승되었다.                 
          이시대는 교학적 측면에서 볼 때는 점쇠(漸衰)시대라고 지칭되기도 하나 사회적 측면에서 보면 결코 쇠퇴
          하지 않고 수, 당 시대의 융성을 그대로 계승하여 거대한 세력을 형성하였다.
     (5) 쇠퇴(衰退)시대 : 청(淸)이후의 쇠퇴(衰退)시대로 구분한다.
          청조 이후에는 교학적으로는 물론 사회적 측면에서고 점차 세력을 상실하여 고승의 출현도 소멸되고 승려
          와 사원도 도태되었다.  황실의 후원이 있을 때 불교는 번창하였고, 황실의 후원이 끊긴 송(宋)나라 이후
          중국불교는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전제 국가시대에서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 할 수도 있겠지만, 황실
          에 대한 의존성을 탈피하고 사회와 민중 속에 강한 뿌리를 심으려는 자생력이 부족했음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중국의 공산화 과정을 거치면서 불교는 점차 그 빛을 잃게 되었으며, 오늘까지 이르게 되었다.
                                  〔참고문헌〕前田惠學 저, 석오진 역,『佛敎要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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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高峰(임외석) (222.♡.240.250) 2021-12-16 (목) 13:59
    청 이후 쇠퇴기는 숭유억불 정책을 유지했던 이조 500년과 닮았군요. 시대별 구분을 이런 관점에서도 가능하군요. 찬찬히 읽어보겠습니다.
    좋은 자료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고봉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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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규 (211.♡.195.92) 2021-12-20 (월) 06:18
    예, 그렇습니다.
    시대별로 명, 청나라 때 우리나라 조선왕조 500년의
    시기이므로 같은 시대이네요.
    태종이 정권을 잡으면서 억불정책(배불정책)을 대대적으로 추진하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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