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암가(太古庵歌)와 태고 보우 스님의 생애
태고 보우 스님이 북한산의 중흥사 동쪽에 태고암(현 태고사)를 짓고 5년 동안 머무는 동안에 지은 게송(偈頌) 태고암가(太古庵歌), 태고스님이 중국에 가서 당시의 선승 석옥청공(石屋淸珙)을 만나 이 노래를 보이니 “참으로 공겁(空劫) 이전의 소식을 얻은 것으로 ‘태고’라는 이름이 틀리지 않았다. 오래도록 글을 주고 받는 일을 사절해 왔는데 붓이 저절로 춤을 추어서 말미에 쓰게 된다.”며 발문을 써준 노래다.
太古庵歌 / 普愚(보우)
吾住此庵吾莫識 내가 기거하는 이 암자 나도 모르나
深深密密無壅塞 깊고 은밀하나 옹색함 없고
函盖乾坤沒向背 하늘 땅 뒤덮어 앞뒤 없으니
不住東西與南北 동서남북에 어찌 머물랴.
珠樓玉殿未爲對 구슬 누각, 백옥 전각도 비할 바 아니고
少室風規亦不式 소림사의 풍습과 규정도 따르지 않네
爍破八萬四千門 팔만 사천 번뇌의 문을 다 부수니
那邊雲外靑山碧 저편 구름 밖 청산이 푸르구나.
山上白雲白又白 산 위의 흰구름 희고 또 희고
山中流泉滴又滴 산중의 샘물은 흐르고 또 흐르네
誰人解看白雲容 누가 있어 저 흰구름을 이해할 것인가
晴雨有時如電擊 비 오고 개이는 것이 번개와 같은데.
誰人解聽此泉聲 누가 이 샘물 소리를 이해할 것인가
千回萬轉流不息 천 구비 만 구비 쉬지 않고 흐르는데
念未生時早是訛 생각을 내기 전에 벌써 틀렸고
更擬開口成狼藉 입을 열려 할 때 더욱 부질없다.
經霜經雨幾春秋 비 오고 서리 온 봄가을이 얼마인데
有甚閑事知今日 어찌 한가롭게 오늘을 알겠는가.
麁也飡細也飡 맛 없는 밥 맛있는 밥
任儞諸人取次喫 모두가 제각각 먹으니
雲門糊餠趙州茶 운문의 떡이나 조주의 차도
何似庵中無味食 어찌 이 암자의 맛없는 음식만 하랴
本來如此舊家風 본래 이런 옛 가풍을
誰敢與君論奇特 누가 있어 기특하다 논할까
一毫端上太古庵 한 가닥 털끝 위의 태고암
寬非寬兮窄非窄 넓은 듯 좁은 듯
重重刹土箇中藏 겹겹의 극락정토 그 중에 있고
過量機路衝天直 넘치는 가르침의 길 하늘에 닿아 있으나
三世如來都不會 삼세여래도 알 수 없고
歷代祖師出不得 역대 조사도 벗어나지 못하는구나
愚愚訥訥主人公 어리석고 어눌한 암자의 주인공
倒行逆施無軌則 도리에 순종하지 않는 행함에 궤칙이 없으며
着却靑州破布衫 청주(靑州)에서 지은 다 헤진 삼베적삼 입고
藤蘿影裡倚絶壁 등나무 넝쿨 속 바위에 기대어 서니
眼前無法亦無人 눈 앞에는 법과 사람 모두 없고
旦暮空對靑山色 아침 저녁으로 푸른 산만 바라보고 있다
几然無事歌此曲 일없이 앉아서 이 곡을 읊으니
西來韻曲愈端的 서쪽에서 온 가락이 확연하도다
徧界有誰同昌和 이 세상 누가 있어 이 노래에 화답할까
靈山少室謾相拍 영산과 소림사가 부질없는 박수를 치는구나
誰將太古沒絃琴 누가 오래된 줄 없는 가야금으로
應此今時無孔笛 구멍 없는 피리를 부는 내 곡에 맞장구 치겠는가
君不見 그대 보지 못하는가
太古庵中太古事 태고암의 태고스런 일을
只這如今明歷歷 다만 지금처럼 뚜렷하기만 한데
百千三昧在其中 백천 삼매의 묘리가 그 중에 있고
利物應緣常寂寂 인연에 응해 온갖 것을 이롭게 하나 늘 고요하도다
此菴非但老僧居 이 암자 노승만 머물지 않고
塵沙佛祖同風格 수많은 부처와 조사(祖師)가 풍격을 같이한다
決定說君莫疑 확실하게 말하니 그대 의심 말라
智亦難知識莫測 지혜나 알음알이로 헤아리기 어렵도다
回光返照尙茫茫 뒤돌아 보며 수행해도 오히려 어둡고 아득하며
直下承當猶滯跡 심신을 참을 실증하는 곳에 두어도 자취에 걸리네.
進問如何還大錯 어떻게 하느냐고 물으면 크게 어긋나 돌아오고
如如不動如頑石 여여부동해도 쓸모 없는 돌과 같네
放下着莫妄想 내려 놓아라, 망상을 하지 마라
卽是如來大圓覺 이것이 여래의 대원각이니라
歷劫何曾出門戶 영원토록 잠시 문호를 나왔으나
暫時落泊今時路 잠시 떨어지면 지금의 길이로다.
此庵本非太古名 이 암자는 본래 태고암이 아닌 것을
乃因今日云太古 오늘에 이르러 태고라 했네
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일체가 있고 일체 가운데 하나
一不得中常了了 하나도 없는 데서 항상 또렷하네.
能其方亦其圓 모나기도 하고 둥글기도 하여
隨流轉處悉幽玄 유를 따라 어디든지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깊네
君若問我山中境 누가 나에게 산중의 경계를 물으면
松風蕭瑟月滿天 솔바람 소슬하고 달빛은 하늘에 가득하오.
道不修禪不參 도도 닦지 않고 선도 하지 않아
水沉燒盡爐無烟 향 다 탄 향로에 연기 없고
徹骨淸兮徹骨貧 사무치게 맑고 사무치게 가난해도
活計自有威音前 살길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네
但伊騰騰恁퐵過 그런대로 그렇게 지내는 거지
何用區區求其然 어찌 구구히 태울 향을 구하랴.
徹骨淸兮徹骨貧 사무치게 맑고 사무치게 가난해도
活計自有威音前 살길은 본래부터 스스로 있네
閑來浩唱太平歌 한가히 태고가 부르며
倒騎鐵牛遊人天 쇠소를 거꾸로 타고 인간계와 천계서 노니노라
兒童觸目盡伎倆 아이들은 보는 대로 재주를 내지만
曳轉不得徒勞眼皮穿 생각처럼 안되어 피곤만 하네
庵中醜拙只如許 암중의 지저분과 졸망함이 나와 같은데
可知何必更重宣 아는 일을 어찌 일부러 다시 밝히랴.
舞罷三臺歸去後 삼대에서 춤추고 돌아간 후에
淸山依舊對林泉 청산은 변함없이 숲과 샘을 대하고 있네
石屋和尙書其尾詞 석옥화상의 발문
先有此菴 이 암자가 먼저 있고
方有世界 세계가 생겼으니
世界壞時 세계가 파괴되어도
此菴不壞 이 암자는 안 무너져
菴中主人 암자 속의 주인공은
無在不在 있지 않은 데가 없어
月照長空 큰 허공에 달 비추듯
風生萬籟 일만 피리 바람 일듯.
元至正七年(高麗 忠穆王 三年) 丁亥八月旦日 湖州 霞霧山 石屋老納
원지정칠년(고려 충목왕 삼년) 정해팔월단일 호주 하무산 석옥노납
七十七歲書 칠십칠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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