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와서 고백하건데, 수년 전에 법수선원에서 몰래 사중물건을 훔친 일이 있었다.
경위는 이렇다.
1999년 봄에 신혼집을 송파구 문정동에 얻은 관계로,
헌인가구단지 위에 있는 강송예비군훈련장을 가는 길에,
우연히 법수선원 간판을 보게 된 것이 계기가 되어 처음으로 방문하게 되었다.
대적광전의 규모와 깊은 숲속에 자리잡은 느낌이 신기했었다.
더욱이 맑은 약수물까지 있어서, 그 후로 부정기적으로 물을 받으러 오곤했다.
지금처럼은 아니지만, 그때도 금강경을 이따금씩 잊지않고 독송하려고 애쓰던 때였는데,
내가 가지고 있었던 금강경 몇 권도 독송용으로 하기에는 좀 불편했었다.
독송용으로 한문으로만 나온 것을 찾으러 대형서점과 불교전문점을 다녀봤었지만,
운이 없었는지 구해지는 못했다.
대부분 한자보다 한글을 더 크게 한 것뿐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좀 거슬렸었다.
그 이듬해인가, 기억은 정확치 않으나, 우연히 대적광전에 들러 108배하고 난 뒤 돌아보니, 법회용으로 진열된 법요집이 책장에 가득했는데, 그 중 금색표지를 한 경전 몇 권이 눈에 띄어 살펴보니, 한지로 영인한 금강경, 그것도 그렇게 찾던 독송용으로 편찬된 한문으로만 된 바로 그것이었다.
가뜩이나 소심한 마음이었지만, 뭘 더 망설이랴! 그렇게 찾아도 없었던 것인데...
바로 갖고 튀었다(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나오네요....^^)..
가슴은 두근 두근...
그도 그런것이, 그 전에 우연히 주지스님을 마주친 적이 있었는데(물론, 그땐 주지스님인지 몰랐죠..),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천도재를 지냈는지 영정을 앞세우고 뭔가를 불에 태우러 나오신 것 같더군요. 그때 눈을 처음 마주쳤었는데, 그 첫 느낌이....(스님이 인상이 좀 강하잖아요)... 속된 표현으로 하면.. 야! 잘못 걸리면 국물도 없겠구나!..거기다 엄청난 풍채하며..(정말이에요..스님껜 죄송..^^)
집으로 차를 몰고 오면서 다짐했었죠. 그래 사중 물건을 훔치는 것은 정말 큰 죄라고 하는데, 이미 저질렀으니 잘 독송하고, 나중에 몇 십배 몇 백배로 법보시하자고...
그 금강경으로 지금도 틈틈이 독송하고 있다.
그런데, 그 금강경으로 인한 묘한 인연을 얼마 전 겪었다.
작년 초여름 무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성타거사님 내외로부터 우연히 금강경독송회를 이끌고 계시는 김재웅법사님이 그의 스승이신 고 백성욱박사님의 법문을 정리한 책 두 권과 필요한 사람에게 주라며 여분으로 두 권을 더 받게 되었다.
그 뒤 틈틈이 읽어 보니 모두가 금강경에 의지하여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가르침을 문답형식으로 정리한 것이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여러 공동체를 형성하고 신행생활을 철저히 하는 것이 큰 감동이었고, 아울러 금강경의 공덕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믿을 수 있는 계기를 가질 수 있었다.
이때까지도 몰랐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 우연히 그 훔친 금강경의 맨 뒤 표지를 보다가 그 금강경이 고 백성욱박사님의 제자들이 내가 훔치기 몇 해 전에 스승을 기리며 모든 공덕을 스승께 회향하며 법보시로 편찬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법보시 금강경을 내가 훔쳐 수 년간 읽었고, 그리고 그 스승의 법문을 앞서 밝힌 경위로 내가 다시금 듣게 된 것이었다.
그 백성욱 박사님의 법문 중에, 특히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 것 있어 소개합니다.
사실 매일 독송하겠다고 맘먹지만, 어디 그게 쉽습니까? 그래도 억지로 의무감으로 할라치면, 저 밑에서부터 화기가올라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는 느낌도 자주 느끼곤 했었는데요. 이 법문 듣고 툭 트이는 시원한 느낌을 받았었다.
...........
공부하겠다면 탐심(貪心),
공부가 왜 안되냐하면 진심(瞋心),
공부가 잘된다고 하면 치심(痴心)이니
이 세 가지 아니하는 것이 수도일진댄
꾸준히 하되 아니하지만 말면 됨이라.
........
이 가르침대로라는 지난 내 독송기간은 탐심, 진심, 치심의 연속인 것이다.
(아! 허무해..그렇지만 사실그러한것 같다.)
법수선원에서 이런 투도중죄를 저지른 것도 모르고,
어제 저녁 무렵 절에 들렀더니, 스님께서 상품이라며 곶감 한 꾸러미를 챙겨주셨다.
앞으로도 도둑질 잘하라고 독려하시는 것인지.. 애고 민망해라....
어쩌면 난 법수선원에서 훔친 죄로 인해 법수선원에서 불은을 입는 과보를 받고 있는지도 모르겠다는 호사스런, 엉뚱한 생각도 해본다.
여러분도 법수선원에서 훔칠만한 것이 없는지 한 번 눈여겨 보세요...^^
이왕이면 법을 훔치면 좋겠지요...무위법을....
(아참, 성타거사님이 주신 백성욱박사님의 법문집 2권이 남아 있으니, 필요하신 분은 댓글 달아주세요. 종무실에 맡길께요. 그때 성타거사님의 말씀이 청하지 않는 사람보다 청하는 사람에게 전하는게 좋다고 하셨거든요..^^)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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