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초에 우연히 일간신문에 실린 도서평에서, 명나라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를 번역한 “왜 나무아미타불인가”를 읽고, 이거다 싶은 생각에 즉시 주문했더니 그 다음날 바로 도착했다.
글씨도 크고, 편집도 보기 편하게 잘 되어 있고, 분량도 작으면서, 역자가 의도적으로 난해한 교리부분은 빼내어 정리된 책이라 서너 시간 만에 다 읽을 수 있었다.
사실 이때까지 내가 지니고 있었던 정토불교에 대한 관념은 그저 하근기의 무식한 중생에게 적합한 뭐 그런 정도의 가르침에 그쳤다.
그러니 2년 전부터 법수선원의 법회에 이따금 참석하게 되면서, 기도 중에 정근도 포함되어 있어 따라하게 되었지만, 사실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화엄성중 등을 따라는 하였지만 머릿속은 열심히 끝나는 시간을 재고 있는 등, 내심으론 지루하게 느껴지는 때가 종종 있었다.
그래서, 아, 이러면 안되겠다 싶어 관세음보살보문품과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 모두 읽어 보았다. 그랬더니 관세음보살님은 그래도 좀 믿음이 가는가 싶었는데 마지막에 “부처님께서 이 보문품을 설하실 때에 대중가운데 팔만사천중생이 모두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하였다”는 부분이 정말 의아하게 느껴졌고, 정토3경은 무슨 동화 내지 설화 같아 보였다.
내심으로 부처님에 대한 신심은 일단 한고비는 넘었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터이라, 이런 상황은 여간 당혹스런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나 어쩌랴. 어디 믿음의 문제가 누가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스스로 넘을 수밖에....
이런 상황에 처해 있었던 지라 “화엄경의 심오한 법장과 법화경의 비밀한 골수와 모든 부처님의 심요와 보살만행의 지남(指南)이 모두 아미타경에 있다”는 우익대사의 주장에 내심 혹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의혹으로 시작하게 되었지만, 이 책을 읽는 동안에 ‘그래 내 문제의 궁극은 바로 여기에 있었고, 이것은 결코 나 혼자만의 문제는 아니었구나’하고 감격해 하는 상황을 여러 번 경험할 수 있었다. 절로 무릎이 쳐진다는 말이 실감났다.
하도 기분이 좋아 연달아 두 번을 더 읽었다. 그런데, 왠지 완전하게 해소되지 않은 그 무엇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해서 정토불교에 대해 야금야금 인터넷을 통해 자료도 찾아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정목스님의 글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분의 신심에 감동되어 그분의 홈피를 방문하여 글을 읽다가, 그분이 번역하신 원효스님의 무량수경종요와 아미타경소를 구입하여 보게 되었다.
일단 끝까지 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을 했지만, 종요는 처음부터 무척 난해해 이해하기 어려웠다. 아니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초반부를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책장을 넘기는 손이 떨리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 뭔가의 정체가 점차 명료해지고 의혹이 풀려나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정목스님이, 자신은 오직 원효스님을 만나기 위해 금생에 태어난 것이 틀림없다고 당당히 밝힌 말씀이 저절로 스쳐지나갔다.
연초부터 지금까지 적은 시간이나마 틈틈이 거듭보고 있지만, 아직도 정토사상에 대해서는 제대로 이해하지는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애초에 정토신앙을 염두에 두고 접근을 한 것이 아니었고, 더구나 정토신앙을 소개할 생각은 더욱 없다.
다만, 원효스님의 종요를 위주로 보면서 믿음과 수행체계를 확립하는데 있어, 더 이상 불필요한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지는 않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고. 원효스님의 저서를 소의경론으로 믿고 받아 지니기로 다짐했다.
예전에 몇 번 시도했다 좌절한 대승기신론이, 드디어 종요를 본 뒤에는 중도포기 않고 끝까지 책장을 넘길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었다. 모두가 시절인연이 있는 모양이다.
이러는 동안에 개인적으로 몇 가지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먼저, 연꽃을 보거나 심지어 연꽃사진 나아가 연꽃생각만 하더라도 우익대사의 아미타경요해에서 인상 깊게 다가왔던 가르침이 스르륵 순간적으로 영상화되는 희안한 일이 그것이다. 발심의 영상화와 삼보의 찬탄 그 자체였다.
그리고, 더 이상 불보살의 명호를 부를 때, 그것이 석가모니불이든, 관세음보살, 지장보살, 약사여래 이든 종전과 같은 의혹이 눈에 띄게 약해졌다. 더 구체적으로 정근시간이 더 이상 지겹지 않게 되었고, 이때 아니면 언제 고성염불해보나 하는 생각이 앞섰다.
가장 큰 변화는 소위 방편법에 대한 그간의 뿌리 깊은 의혹과 편견을 제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리가 방편법이라는 말을 쓰는 상황을 가만히 보면, 나만은 절대 속고 싶지 않다는, 더 정확하게는 나를 뭘로 보고 감히 얕잡아 보는 거야 하는 뿌리 깊은 아상에 근거하고 있음을 부인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원력을 세워, 예컨대, 지성으로 아미타불 등의 염불을 지속하는 그것은 염불행자 본인이 하는 것이지 결코 아미타불이나 다른 불보살이 대신 수행해주는 것은 분명 아니지 않은가 하는 생각에 이르자, 자력과 타력의 한계는 관점의 문제라고 자연히 정리되었다.
오히려 자신에 맞는 수행법을 제대로 찾았는지, 그리고 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게 되었는지가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아울러, 어떤 수행법이든지 그것이 발심과 단절되어 이해된다면, 그것은 더 이상 방편법에도 못미치는 삿된 법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관세음보살보문품의 마지막부분에 대해 앞서 언급한 의문도 나름대로 풀어볼 기회를 가질수 있었다.
끝으로, 극락세계에 대한 나의 관념은 막연히 기독교 일반인의 유토피아적인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었는데, 이제 보니 극락세계는 그런 무위도락의 세계가 아니고, 오로지 최상의 수행환경이 장엄되어 있는 곳으로, 오직 대승의 보리심을 발하여 수행하는 사람들만이 최상승법을 닦기 위해 머무르는 원력의 정토임을 알게 되었다.(십법계의 천상세계가 결코 아니었다.)
그동안 극락정토에 왕생을 발원하지 못하고 있었던 나로서는, 그것이 믿음도 성취가 안되었고, 발심도 되지 않았다는 것에 그 원인 있음을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이상, 두서없이 적다보니 꽤 많은 양이 되었네요. 결코 정토신앙에 대해 주장하려는 것이 아니고요, 다만, 혹시 저처럼 이따금씩 갈지자로 생활하는 것에 스스로 불만인 분들이 계시면, “왜 나무아미타불인가”를 한 번 일독해 보시라고 권하고 싶을 뿐입니다.
천행으로 희유한 불법문중에 들어와서도 믿음을 가지고 발심하지 못하여 의혹을 가진채, 자신만의 수행방편을 마련치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상태에 머물고 있었음을 반성하면서, 부끄러움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이런 사람은 극락왕생을 발원하더라도 연꽃에서 화생하는 것이 아니라 극락정토의 변방에서 태생으로 태어나고 삼보도 오랜 세월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한다고 하네요)
참고로, 무념,무상의 다른 대승법과는 달리 정토사상은 유념 유상으로 우리 중생들이 오감으로 절대의 경계를 감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준다는 점에서 그 묘함이 있지 않은가 하는 혹자의 주장에 일응 상당히 공감이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