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영 / 논설위원ㆍ중앙승가대 교수
스님들은 통상 법랍에 근거하여 좌차를 정한다. 세속 나이가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절에 들어온 이상 출가자는 출가 연령에 따라 차례를 정해 나가는 원칙을 따라야 한다. 스님들은 또한 출가와 함께 법명이라는 새로운 이름도 받는다. 출가자가 어느 가문에서 태어났든, 부모로부터 어떠한 이름을 받았든 그것은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못한다. 출가는 진정한 부처님 제자로서의 첫 출발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법명 앞에 성씨를 밝히는 일은 금기시해왔던 사항이기도 하다. 그래서 4세기에 활동했던 중국의 고승 도안(道安)은 출가자 모두 석(釋)씨라는 성을 지니자는 제안을 한 적도 있다.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세속의 성씨를 법명 앞에 밝히는 스님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최근에도 종단에서 중요한 일을 담당하셨던 스님들이 당신의 법명 앞에 성씨를 병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다보니 오히려 성씨를 붙이는 일이 당연한 것처럼 오인되기도 한다. 과거 전통시대의 성씨는 현대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영향력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시대에도 스님들의 성씨가 무엇이었는지는 알 필요도 없었고, 관심의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보조 지눌, 나옹 혜근, 태고 보우, 서산 휴정 등등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수많은 고승들의 이름은 법명과 법호에 불과하다. 그 분들의 성씨가 무엇인지는 비문이나 행장 자료를 뒤져보아야 비로소 알 수 있다. 스님들의 법명 앞에 성씨를 밝히는 일은 출가 정신의 당당함을 퇴색시키는 일에 불과하다.
일제강점기 35년간의 역사가 끼친 상흔은 우리 사회 곳곳에 아직도 남아 있다. 한일강제병합 100년이 되는 해를 맞이하여 우리 불교계 전반에 일제 불교의 잔재가 남아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되돌아보아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스님들 사이에서 성씨와 법명을 함께 쓰는 ‘기이한 현상’이 사라져갔으면 좋겠다.
[불교신문 2597호/ 2월10일자]
2010-02-06 오전 9:19:50 / 송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