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나무 우물가에...동네처녀....

스님: 이거 드세요.
명예회장님: 야...이거 뭐야. 앵두잖아. 진덕거사 앵두 알아?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처녀...알아?

앵두
별 대단치도 않는 사랑이 꽃피는 산골,
앵두같은 사랑이 영그는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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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우물가에 피는 나무는 앵두나무여야 한다.
익기도 전에 온동네가 탐을 내는, 익기도 전에 '서리'당하는 사과 복숭아는 아니다.
우물가에는 있으면 있는 둥, 없으면 없는 둥 앵두가 제격이다.
익기를 기다릴 것도 없고  떨어져 사라진대도  애닯을 것도 없고,

꽃필때조차 눈길을 받지도 못하다가 익어야 비로소 알아차리는.
그것도 이파리에 가려 수줍은 듯 발갛게 익을 때만이.
그리고는 내처 잊혀버리는.

마치 그시절 어느 산골에서나 '아무렇지도 않고 그리 예쁠 것도 없던' 누이들처럼.
엉덩이가 펑퍼짐해져야 그때서야 어릴적 소꼽동무가 성숙한 걸 알아차리는
인생 60에 딱 한 시절만 예뻤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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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백화점 1층의 귀금속 코너는 조명이 천장이 아니라 진열장에 있다.
아래에서 위로 비추면 얼굴이 환해지기 때문이다.
봄햇살은 더할 것이다.
우물가 흐르는 물에 반사된 햇살이 어른 거려 
빨래하느라 발가랗게 상기되면
얼굴 가무잡잡하고 별다를 것도 없는 산골 소녀도 공주가 되는 순간이다.
그 순간, 인생 60에 찰나처럼 예뻤던.

그렇다고 복숭아나 살구처럼 누구나 아는 그런게 아니라 있는둥 없는둥 앵두와 다름없는.
시장판에 사람과 섞여 있으면 누가 누군지 구분하기 어려운.
우리 집 문을 열고 들어오면 우리집 여자고, 뒷집에 들어가면 뒷집 여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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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그만하면 됐다.

가난이야 정부도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결혼은 다르다.
앞동네 뒷동네 온동네가 합심하니 안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밭한떼가 없는 타성받이 총각도 '사지가 멀쩡하면, 그만하면 됐다.'고 하고.
말을 더듬는 처녀도 '여자가 말많으면 시갓집 욕밖에 더하겠나. 그만하면 됐다.'고 하고...

여기에 '삼생의 인연'이나 '월하 빙인'이 등장할 그런 계재도 아니다.
심수봉처럼 '큐피트 화살이 가슴을 뚫고 지나간' 이런거 없다.
박인환의 시처럼 인생이라는 게 통속하거늘. 뭐 그렇겠는가.

있다면,  앵두나무 꽃피는 시절 발가랗게 상기된 얼굴,
물에 비치어 어른거리는 얼굴. 울렁거리는 가슴.
그 순간이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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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딱 그때 젊은 청년과 결혼을 하게 된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앞동네이거나 뒷동네에 사는 총각이다.
' 남자가 그만하면 되었다.'라는 말을 들으면서.
비단이불 덮고 곳간에 쌀을 가득 채워줄 남자가 아니라'그만하면 됀' 남자와 결혼을 한다.

풀어낼 연애 드라마도 없고 도드라진 사연도 없는 그렇고 그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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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산업화가 되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대처로 갔다.
진작에 영어는 그만두어도 나폴레옹의 'Boys Be Ambitious'야망을 가슴에 안은 청년과
서울로 가면 '신성일'이 널려 있을 것 같은 생각에 처녀들은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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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몇년이 지나  그들이 결혼을 하고 데려온 짝은 하나같이 말투가 달랐다.
그러나 말투만 빼고나면 앞동네 뒷동네에 있을 법한 그런 '그만하면 됀' 그런 짝이었다.
그렇게 멀리서 구할 것도 없는.

앵두나무처럼 있으면 있는 둥, 안보면 못살 그런 게 아니다.
결국 윤정희나 정윤희 신성일은 그들의 짝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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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나도 곧이어 그들처럼 대처로 떠났다.
그리고 다른 말씨를 쓰는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말씨만 빼고나면
아랫마을에서 자랐거나 뒷마을에서 컸을 딱 그런 여자다.

여기에 무슨 '삼생의 인연'이 놓여있거나 '월하빙인'이 등장하겠는가.
나는 그래서 '사랑'이라거나, '영원히'라거나 '죽도록' 하는 간살스러운 말을 못하겠다.


ㅁ 그러나 그녀도 아마 얼굴에 마른 버짐이 사라지고 볼우물이 생길 무렵,
구례군 산동면 월계리 우물가에서 빨래를 하며 상기된 얼굴에 햇살이 어른 거렸을 것이다
앵두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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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산업화는 어디라 할 것 없이 농어촌의 처녀총각, 저임금의 임가공인력으로 시작된다.
박정희 시대 역시 마찬가지이다.
박정희는 산업화에 박차를 가한다.
퇴로를 막기 위해 동네마다 있던 우물을 없앴다.
앵두나무도 사라졌다.

그만하면 됀' 총각과 '딱 한 철' 볼우물이 예뻤던 처녀들의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사랑은 불가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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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목숨을 건다는 사랑이 넘쳐난다.
심수봉의 노래 '비나리'에서처럼 사랑에 '하늘'을 거론하는 사랑이 넘쳐난다.
없으면 못살 그런 사랑이 TV에 흘러다닌다.


짚신도 짝이 있다'라는 말은 틀렸다.
짚신은 짝이 있다.'가 정확하다.
뭐 대충 맞으면 신는 짚신은 항상 짝이 있는 법.
다른 신발들은 짝을 찾기가 어려운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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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요즘내기들이 기다리는 건 앵두나무 사랑이 아닐 것이다.
어느 시인도 기리지 않는 꽃 앵두꽃.
어느 작가도 기리지 않는 열매 앵두.
대중가요 '앵두나무 처녀' 한곡만 남이있는. 희미한 옛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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ㅁ 앵두는 산골 처녀 총각들의 열매이다.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것도 없는' 그들식 사랑은 산업화와 도시화에 밀려 영원히 사라졌다.
그래서 앵두는 슬픈 열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