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헉헉대며 올라가는 산길.
프로 산악가에겐 그런 길이 힘들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막상 험한 산길 올라가니
프로나 아마추어인 나나 힘든 것은 마찬가지.
다만 조금더 힘들고 덜 힘든 차이만 있을 뿐,
산을 타는 것은 누구에게나 힘들다.
헉헉대며 뛰어가는 마라톤길.
늘 그 길을 뛰는 이들은 힘들지 않은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렇지 않은 것.
늘 뛰는 이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
다만, 좀더 인내하고 덜 힘드는 법을 알 뿐,
아득한 그 길은 프로에게도 힘들다.
삶도 마찬가지.
많은 분들이, 수행 많이 하고 영성 뛰어난 분들은 삶이 힘들지 않은 줄 안다.
그리고 실제로 수행 많이 하고 밝아진 분들은 그렇게 우리 앞에 다가오신다.
그러나 나는 그 분들의 그러한 모습을 믿지 않는다.
삶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힘든 법.
그 사실을 알기에, 언제나 우리 앞에 만면의 미소만 짓는 분을,
나는 믿지 않는 것이다.
행복은 잠시, 삶에 지친 이들에게 주는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것.
행복의 푸른 하늘 잠시 비추이면, 삶은 다시 힘든 구름으로 덮힌다.
그러나 어이 하리, 이것이 삶의 진실인 것을...
소설가 김 성동 선생은 그의 소설 <만다라>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왜 부처는 웃음 짓는 분만 있냐고!
왜 중생의 고통에 아파하고 찡그리는 부처는 없냐고!
그래서 만다라의 구도자 비구 지산(知山)은,
고통에 일그러진 부처를 한사코 나무에 그린다.
후배 법운(法雲)이 그렇게 말려도 지산은 그렇게 자신만의 부처,
고통 받는 부처의 모습을 나무에 사무치게 새긴다.
중생의 고통을 모르는 부처는 없다며,
늘 웃음짓는 부처님은 거짓이라며,
정말 세상의 모든 것을 깨친 부처라면 결코 그렇지 않을 것이라며,
아무도 만들지 않는 일그러진 부처를 그렇게 만들고 또 만들고 간다.
아! 지산의 이 행동은,
치기인가, 아니면 누구도 알지 못할, 진실의 몸부림인가...
삶은 누구에게나 힘든 것.
이 힘든 삶을, 공부하면, 수행하면, 구원 받으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 말자.
그것은 이웃을 속이는 일.
밝게 공부하는 수행자들은 차마 할 일이 아닐지라!
공부하고 수행하고 아무리 구원 받아도,
알고 보면 삶은 한결같이 힘들기만 한 곳.
잠시 구원받고 해탈한 것 같아도,
삶은 끝없는 물결 밀려오는 곳.
어찌 하늘에 비가 뿌리지 않고,
어찌 바다에 풍랑 일지 않겠는가.
비가 오는데 힘들지 않은 이 어디 있으며,
풍랑 이는데 마음 편한 항해자 어디 있는가.
그러니 삶은, 언제나 힘든 것.
그러니 불교에서는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참음(忍辱)의 세계,
사바(裟婆)>라 한 것일 터. 다만 공부하고 안하고 수행하고 안하고
구원 받고 안 하고의 차이는,
그 힘든 것에 얼마나 젖지 않고 이 힘든 삶을 헤쳐나가는가에 있을 뿐,
삶은 누구나, 언제나 힘든 것.
그러니 가짜 웃음 짓지 말고 이웃 속이지 말고,
허심탄회 하게 이 힘든 삶을 함께 헤쳐나갔으면.
그래서 아픈 이웃 더 아프게 하지 말고,
그래서 힘든 이웃 더 상처 받게 하지 말고,
우리 모두 함께,
이 힘든 곳,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며,
그렇게 밝고 힘차게 헤쳐나갔으면...
* 苦海를 건너는 최상의 길은
부처님이 인도하시는 길이다 ...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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