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리석음에 대하여
“어리석음”은 우리들이 잘 아는 상식적인 말로서 우리 불교에서는 매우 중요한 용어로 쓴다. “어리석음”은 “치(癡)”의뜻으로 “무명”(어두움)이나 “무지”(모름)와 같은 뜻이다. 경전에서는 어리석음 대신에 무지나 무명이 쓰인 데가 대단히 많다. 이것은 모든 악과 모든 괴로움의 근본으로 보는 세 가지 독(삼독) 즉 탐욕, 성냄, 어리석음(탐진치) 가운데 마지막의 것이다. 불교에서는 이 어리석음은 악과 불행의 원인으로서 앞의 두 가지 탐욕이나 성냄보다도 더 근원적인 것으로 본다. 그래서 열두 가지 인과법(12지인과) 가운데서 ‘무명’이 맨 첫 인연으로 나온다.
그리고 경전 특히 초기 근본 불교 경인 아함경에 탐욕이 일어나는 원인으로서 바로 앞에 무지 또는 무명이나 이들의 현상이 자주 설해져 있다. 바로 앞에 지적한 바와 같이 십이지 인과 가운데서 ‘무명’이 맨 먼저 근본 원인으로 나오는 것은 이 어리석음 즉 무지, 무명이 모든 번뇌의 근원적인 원인임을 보이는 대표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또 십악 가운데서는 마지막 열 번째의 악으로서 “그릇된 소견”을 들고 있는데, 이것도 어리석음과 같은 뜻이다. 그릇된 소견은 팔정도 가운데의 “바른 소견”이 아닌 것을 뜻한다. 십악에서는 십이지 인과법에서와는 반대로 악의 현상적 모양을 먼저 들고. 뒤에 그것들의 원인들이 되는 탐진치를 들고 있어서, 치 즉 어리석음은 맨 뒤에 있는데, 맨 뒤에서 이 무명인 어리석음이 모든 악과 불행의 근원적인 원인임을 보여주고 있다.
어리석음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위에서 든 이의 다른 이름들이 바로 이 어리석음이 무엇을 뜻하는가를 잘 보인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무지이고 무명이며, 십악 가운데의 그릇된 소견들이다. 이러한 모든 것은 팔정도의 첫 길인 바른 소견이 아닌 것들이다. 그러면 무엇을 모르는 것을 무지라 하고, 어떻게 어두우면 무명이라 하고, 무엇을 어떻게 보는 것을 그릇된 소견이라고 하는가. 사실을 사실대로 모르는 것을 무지라고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못 보는 것을 무명이라고 하고, 사실을 사실대로 못 보고 그릇되게 거꾸로 보는 것을 그릇된 소견(바른 소견이 아닌)이라 한다. 그러면 그 사실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들이 보고 듣고 먹고 만지고 소유하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무상하고, 덧없고, 변하고 바뀌는 이 사실들이다.
이 사실을 사실대로 모르는 무지, 사실대로 밝지 못한 무명, 사실을 거꾸로 보는 그릇된 소견들 때문에 우리들에게 탐욕이 일어나고 성남이 일어나서 우리가 여러 가지 악과 거짓을 행하고, 그래서 우리는 여러 가지 괴로움과 불행을, 남과 늙음과 병과 죽음을 겪게 된다.
어리석음을 무지나 무명이나 그릇된 소견들로서 좀 단순하게 말할 수 있지마는, 이를 근본적인 것으로 말하면 ‘깨닫지 못했음’이다. 이른바 ‘근본 무명’ 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아마도 이 ‘깨닫지 못 했음’을 가리키겠다. ‘성불’하지 못하고,‘견성’하지 못하고, 법 을,진리를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 하였으면, 아라한이 되지 못 하였으면, 바로 이것이 근원적인 어리석음으로서 생사유전의 원인으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것이 된다.
따라서 악과 불의의 원인으로서 괴로움과 불행과 생사윤회의 가장 깊은 원인인 이 어리석음을 없애는 것이 불교에서는 최고의 덕목이다. 이것이 지혜이고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 최고의 지혜를, 깨달음을 얻는 방법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무엇이겠는가, 여덟 가지 바른 길(팔정도)이다. “초전 법륜 경” 가운데의 한 구절은 이러하다: “무엇이 눈을 주고, 앎을 주고, 밝음을 주고, 깨달음을 주는 여덟 가지 바른 길인가. 그것은 바른 소견, 바른 뜻, 바른 말, 바른 행동, 바른 생활, 바른 노력, 바른 일념, 바른 선정 이니라” 여덟 가지 바른 길의 하나하나의 덕목들을 주의 깊게 닦아 나아가면 어리석음은 차츰 사라지고, 밝은 눈, 밝은 지혜를 얻어 모든 괴로움을, 생사의 굴레를 영원히 벗어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