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기사를 검색하다가 큰스님 새해 말씀이 있어서 올려봅니다...^^
(본문)
“새해에는 헛일 헛걸음 헛말 말라”
새해덕담- 선지식에게 길을 묻다
경남 산청 해동선원 조실 성 수 스님
“밝은 달은 바다에 있으나 주워 담을 수 없고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으나 만나보기 어렵다”
“불살생(不殺生)의 계는
‘죽이지 말라’가 아니라
‘죽지 말라’는 뜻이야”
경남 산청 해동선원을 찾았을 때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단연 선원의 글자였다. 해동선원은 ‘海東禪院’이 아니라 ‘海東禪源’이었던 것. 처음에는 의아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중에는 저절로 고개를 끄덕거리게 됐다. 선원에는 ‘海東禪源’이라는 명칭에 걸맞게 두 분의 선의 원천(源泉)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한 분은 이 땅에 깨달음의 꽃씨를 뿌린 원효대사이고 다른 한 분은 올곧은 수행정신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조계종 전계대화상 활산 성수스님이다.
스님은 84세의 노구에도 불구하고 불자들에게 전할 새해 덕담을 묻자 형형한 눈빛을 발하며 젊은 시절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 ‘취모의 검’을 휘둘렀던 ‘사자새끼’의 면모 그대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법문을 설했다.
“새해에는 헛일하지 말고, 헛걸음하지 말고, 헛말하지 말아라.”
성수스님이 불자들에게 권한 것은 너무도 짧은 몇 마디였지만, 실천에 옮기기에는 너무도 힘든 가르침이었다.
“불제자라면 마땅히 발심(發心)을 내야 해. 흔히들 입으로만 발심하고 행동은 전혀 않는 경우가 많아. 그러면 안돼. 그게 제대로 불법을 공부하지 않아서 그래.”
오계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그 예로 스님은 불살생(不殺生)의 계를 들었다. 스님의 말씀을 설명하면 한자는 표의문자여서 능동형과 수동형 둘 다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불살생(不殺生)은 ‘생명을 죽이지 말라’로 해석도 되지만, ‘죽지 말지어다’라는 뜻도 된다는 것.
“불살생(不殺生)은 ‘죽지 말라’는 뜻이야.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가르침이 담긴 말이야. 대인(大人)은 자기 자신을 생각하고, 소인(小人)은 남을 생각해. 그렇다고 대인이 이기적이고 소인이 이타적이다는 말은 아니야. 자기 자신을 살펴 본래면목을 봐야 남도 돌볼 수 있다는 얘기지. 상구보리 하화중생(上求菩提 下化衆生)이라는 가르침도 같은 말이지. 내가 깨달아야 남도 돌볼 수 있는 법이야.”
스님은 이어 대원 장경호 거사와의 인연을 들어 재가자 수행법에 대해 설명했다.
“재가자라고 다 피동적인 것은 아니야. 장경호 거사는 난 인물이었지. 머리가 파뿌리처럼 센 이순(耳順)의 노인네가 새파란 나를 찾아왔어. 장 거사가 토굴에 들어서서 한 말이 뭔 줄 알아. ‘10년은 공부하는 데 속고 10년은 도를 트는 데 속고 10년은 도를 이루는 데 속고 살았습니다. 스님. 속지 않고 사는 법을 가르쳐주십시오?’ 나는 ‘저 뜰 밑의 개미벌레가 나보다 낫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뭘 하려고 하다가도 실행실천을 옮기지 못합니다’라고 답했지.”
스님은 장경호 거사와 ‘사람 만드는 공장’을 만들기로 언약했던 옛 기억을 더듬으며, 재가자들의 수행을 독려했다. 스님은 또 깨달음을 얻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선과제로 아상(我想)을 버려야 한다고 충고했다.
“내가 범어사에 있을 때야. 부산에 사는 한 거사가 와서 도(道)를 물었어. 내가 말했지. ‘산에 부처도 없는데 무슨 도가 있겠소.’ 그러자 그는 막막하다는 듯이 내 얼굴만 쳐다보았어. 내가 다시 말했지. ‘불법을 알려고 하기 전에 지덕(知德)을 많이 닦고 쌓아서 인격이 완성돼야 비로소 불도를 닦을 수 있는데 거사는 불(佛)이 무엇인지 법(法)이 무엇인지 도(道)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앞뒤도 모르는 처지이므로 이 산승이 이제부터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아침에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서 단 오분만이라도 자기 정신을 잃지도 놓치지도 말고 완전히 잡아 둘 수 있는 수양을 쌓아 보시오’라고.”
스님은 부산 거사와의 일화를 든 후 이렇게 말했다.
“밝은 달은 바다에 있으나 주워 담을 수 없고 마음은 항상 가지고 있으나 만나보기 어렵다.”
스님이 불법을 ‘바다에 비친 달’로 비유하는 이유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복을 바라는 데 있는 게 아니고 깨닫고 그 깨달음을 사회화하는 데 있기 때문이다.
“안 늙고 안 아프고 안 죽는 거 배우러 가는 곳이 절이야. 절 드리고 복을 바라는 곳이 아니란 말이야. 우리 불교는 많이 부패했어. 절은 묵은 땅이고 중은 그 땅에 피어난 고질병 걸린 열매야. 다 갈아엎어야 돼.”
어릴 적부터 노인들에게 생의 지혜를 구하기를 좋아해 얻어진 별명이 ‘햇늙은이’. 원효스님의 무애의 춤사위를 얻고자 전국 사찰을 돌며 원로대덕스님들에게 선기(禪器)로서 두루 인정받아서 얻어진 별명이 ‘사자새끼’. 스님이 지금 그리운 것은 일찌감치 혜안을 얻고자 갈구하는 제2의 ‘햇늙은이’이며, 아무런 씨앗도 피우지 못할 것만 같은 묵은 황무지를 뒤엎을 패기를 지닌 제2의 ‘사자새끼’이다.
“이젠 햇늙은이도 없고, 사자새끼도 없어. 운수납자라고는 하지만 하나같이 꽃 피기도 전에 꽃망울이 떨어지고 열매가 익기도 전에 벌레가 먹어서 법기로서 쓸 수가 없어. 제2의 햇늙은이가 있다면 두런두런 원효스님의 일화를 들려주며 밤을 새워도 좋으련만. 제2의 사자새끼가 있다면 그 날카로운 이빨에 내 본래면목을 모두 내줘도 좋으련만.”
봄이 오면 지팡이를 짚고 산으로 오르겠다는 스님. 오는 병술년에는 성수스님의 기개를 닮은 많은 불제자들이 배출되길 기대해본다.
경남 산청 해동선원=유응오 기자
arche@jubul.co.kr
주간불교 877호 2006년 1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