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북한산 가면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좋았던 날씨가 아침부터 흐려지더니, 점심무렵 짙은 구름으로 어두워졌다가
봄비 30분정도 내리고 그러다가 흰눈이 펄펄 내린 날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산에는 사람들이 드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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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는 아조 오랜 옛날.
봄산, 여름산, 가을산, 겨울산이 모여 서로 신세타령을 하였다더라.
가을산이 푸념하길,
- " 내가 단풍들고, 낙엽을 쌓아 산길을 덮어 버리는 까닭이 무언지 알간들?
공산만월(空山滿月)에 풀벌레 소리 처연히 듣자고 한건데,
사람들 밀어닥쳐 거친 말소리에 내가 몸살을 앓게 되었네.
이 모두 누구 탓인지 알아?
바로 문사, 재사들 때문이네.
그들이 쓸데없는 문명(文名)과 술한잔을 위해 끄적인 글들 때문이지.
당나라 시대때 두목(杜牧)이 쓴 시구절을 한번 볼까?
상엽홍어이월화(霜葉紅於二月花)라. 서리 물든 잎이 봄꽃보다 붉네.
이게 얼마나 많은 어린 아해들을 산으로 끌어 들였는지.
이제 산에서 귀또리 소리 끊긴지 오래 되었네.
누가 내 신세보다 처량할소냐."
이 말을 듣고 겨울산이 하소연하길.
- "추산(秋山)은 그런말 마소. 내말한번 들어보소,
삼동설한, 백설 분분, 눈을 펑펑 내리는 게 왠지알아?
나라고 겨울잠이 왜 없겠소.
그런데 그런 눈길도 헤집고 올라오는 사람들 심보는 도대체 무언가?
유종원(柳宗元)이 애닯도다.
천산조비절(千山鳥飛絶)이요, 산이란 산에는 새한마리 날지 않고
만경인종멸(萬逕人踪滅)이요, 길마다 사람 자취 끊어졌는데 ( 시. 강설(降雪)중에서)
내 풋잠깨다말자 정신이 도통 없어 개구리에게 참으로 미안하이.
춘삼월햇살에 이어 다시 한파를 끼쳐 개구리 알이 다 얼었다나."
이 말끝을 잡아 봄산이 위로하길.
- " 동산(冬山)형님은 아무 죄 없소.
각다귀같이 달려드는 사람들 쫓으려 내 꽃샘추위 보낸건데, 내탓이오.
참말로 속상하이.
내 봄꽃피어냄은 벌나비 꾀어 청산에 가자 하였건데
꽃가지 꺽는 건 그 무슨 심보인고.
내 설움을 이기지 못해 황사로 나를 감추고자 하건만
무섭다. 그들의 거친 발자국이란. 황사도 뚫고 올라오네.
어디 여름산(夏山) 한번 이야기 해보소.
여름산이 이르길.
- "나라고 어찌 서럽지 않겠소.
인간들의 흔적들을 모두 씻어버리려 여름 소나기를 퍼부어대도
죽자고 달려들듯 산에오는 인간들에겐 질린지 오래요.
녹음방초 하시절 천둥치고 번개치는 게 왜인지 아시오?
여러 천신(天神) 지신(地神신들을 불러모아 왁자지껄 파티여는 소리요.
천둥은 그들말로 노래방이요, 번개는 레이져쑈라.
그런데 오라는 친구들은 떠나버리고
오지말라는 산꾼들만 득실대니, 참으로 외롭기 그지없소.
이렇게 돌아가면서 신세타령 하던 차에
머뭇거리며 끼어드는 소리가 있어 모두 돌아보니 바위산(岩山)이라.
바위산은 봄여름가을겨울 할 것 없이 산 한 귀퉁이에서 묵묵히 있는 친구라서
그들은 잊고 있었다.
궁금하여 "암산(岩山)도 할말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소."라고 하였더니
바위산이 가로되
- " 당신들에 비하면 내 몸은 앙징맛게 작지 않소.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하는 짓이란...
내 바위틈새에 기대어 살던 나무들을 베어내니
마치 낙지 대가리 꼴이 났어니.
여름날 더위를 누가 막아주나, 겨울 한추위를 누가 덮어주나.
산새도 날아오지 않아 일년내도록 누가 나를 벗삼아 소식을 전해줄까나.
그러고는 희희낙락하면서
내 가슴에 못을 박지 않나.
자연미인인 내 얼굴에 분칠을 해대지 않나,
그들의 신발로 줄창 비벼서 항상 내얼굴은 생채기가 떠날 날이 없소.
내가 사시사철 말없이 침울한건 다 이때문이오.
나도 봄꽃과 벌나비를 좋아하고, 한여름밤의 파티 구경도 좋고
가을 귀또리, 겨울잠을 자고 싶건만
이제 다 틀렸소. 다 허사요.
이 말을 들은 봄산여름산가을산겨울산이 함께 말하길
-" 듣고보니 네신세가 제일 처량타. 처량타. " 하면서 돌아갔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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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 : 맨 밑의 바위산의 푸념중에 나오는 클라이밍 용어입니다.~~
* 나무를 베어내다 : 바위 틈새를 오르기 위해 개척을 하는 것을 말함
* 못을 박다 : 바위 틈새에 하켄이나 볼트 등 금속물을 확보를 위해 박는 것.
* 분칠 : 마찰력을 높이기 위해 손에 바르는 분필가루
* 신발을 비비다. : 스미어링(smearing)-미끌어지지 않기 위해 암벽화를 비벼대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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