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지난 가을 외제차 피해 주차하다 접촉사고난 경험이 있어 주의깊게 주차하던 중, 내 앞의 완만하게 경사진 길을 구르마 끌고 올라가는, 한 동안 안보였던 할머니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도모르게 크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할머니....저희 사무실에 가면 신문 많이 있어요..."
서둘러 주차하고, 사무실에 가보니, 할머니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주섬주섬, 얼마안되는 신문지와 파지 등을 구르마에 실어 주고 한 동안 안보이시더라 했더니, 말없이 웃으시곤 고맙다고 가시더군요...
이 할머니는 제 사무실 바로 뒷골목의 허름한 반지하방에서 거동이 불편한 할아버지와 두분이서 의지하고 살고 계신 분입니다.
작년 봄무렵, 분당의 대형교회 권사님인 단골손님으로부터, 인근에 정말로 훌륭한 목회자였던 노부부가 살고 있는데, 꼭 한번 만나보고 싶고, 또한 도움을 주고싶다는 말과 함께 그 노부부의 얘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내용인 즉, 그 노부부는 강원도 어느 산촌에서 평생 개척교회를 하셨고 70세가 될 무렵, 모든것을 다 놓아두고 홀연히 그 마을에서 떠나 연락이 끊겼고, 그동안 노부부목사로부터 은혜를 입은 이들이 어떻게 알고 찾아오면 또 거처를 옮기면서 생활을 해 오고 있으며, 남의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오로지 두 노부부만의 노력으로 청빈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 6개월쯤 지나서 가을 무렵에 그 노부부의 거처를 알게 되었고, 구르마를 끌며 파지 등을 모아 생활한다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힘닿는데로 신문지 등을 모아 할머니 지나시는 것을 목격하면 달려가 실어주는 것이 전부였고요...
(원래 할아버지와 두 분이서 구르마를 끌었는데, 할아버지의 거동이 갑자기 둔해져서 혼자하신다고 하네요..그런데도 표정이 너무 맑습니다..)
사실, 서민경제가 바닥이라 그런지, 파지수집하는 사람도 너무 많아서, 이젠 사무실내로 불시에 들어와서 신문등을 달라고까지 합니다.. 이런땐, 안줄수도 없고, 적당히 나눠주고 있어요...왜냐구요? 할머니 몫은 남겨놔야 하니까요..
밀집모자처럼 생킨 큰 모자를 쓰시고 기우뚱거리며 골목길로 가시는 뒷모습을 볼때면, 호젓한 길을 걷고 있는 탕탕무애한 스님의 뒷모습 사진을 봤을 때의 느낌을 받곤 했습니다.
흔히 '무소유'하면 출가사문을 생각하기 쉬운데, 평생 목회자였던 이름모를 어느 노부부의 드러나지 않는 삶을 가까이서 보다가, 이렇게 살짝 드러내봅니다...
(지금도, 남의눈에 안띠려고 인근 대형교회의 새벽예배만 매일 두 분이서 참석하고 있답니다.. 다른 종교인이지만, 엄숙한 신앙인의 삶을 보았습니다. 게을러서 일주일에 한 두번도 인근사찰의 아침기도도 못가는 제 모습이 부끄러웠습니다..)
두 분이 오래오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모 권사님이 이분들을 항상 지켜보고 계시고 있어, 더이상 거동이 힘들어지면 교회사택으로 모실계획이랍니다..물론, 이러한 사정은 이 두분은 모르고 있습니다...덕은 외롭지 않다는 성인의 말은 진실인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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