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이런 날을 맞았을까?
여러 해 전에 열반하신 광덕큰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의’를 어찌 어찌해서 접해 몇 차례 읽고 방치하다, 수일 전에 무언가에 이끌려 다시 읽었다. 아니 이번에는 광덕큰스님의 법회에 참석해서 법문을 들었다고 하는 것이 나을 듯 하다.
조금 전에 법회가 끝났다. 벅차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가 없다. 이렇게 얘기하면 뭔가 대단한 깨침 내지 영감이라도 얻었을 것이라 생각할 수도 있겠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일 뿐일 것이다.
이세상의 어떤 고통보다도 제 발톱 속에 낀 가시가 주는 통증이 제일이라 하지 않았던가. 그러했다. 지금 내가 느끼는 벅찬 감동은 내 발톱에 낀 가시가 빠진데서 연유한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가시가 박히자 마자 쉽게 직접 제거하거나, 아니면 아프다고 소리쳐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을 터인데, 유독 나는 그렇지 못했다.
남들은 관세음기도정근도 잘하고, 절수행도 잘도 하는데, 법문도 경청하는데,나는 그러지 못했다. 물론 억지로 해보려고도 했었다. 대학재학시절, 무더운 여름날 천배, 삼천배도 해보지 않고는 신앙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어느 시니컬한 노스님(당시 조계종 포교부원장으로 기억됨)의 조계사 법문을 듣고 느낀 점이 별안간 떠 올라, 몇 년 전 법수선원에서 찌는 7월 어느 날에 일천배도 해 봤다. 신심이 견고하지 못한데 얼마나 힘들었겠는가. 지금도 그때 생각하면 스스로 연민의 정이 간다.
막연하게 불교에는 마음이 가 있고, 이런 저런 불경도 조금씩 보고, 여러 큰스님들의 법문들은 것들이 쌓이다 보니, 삿된 알음알이만 앞서며,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고 도대체 ‘불교가 뭐지’하는 체념적 물음 속에서, 다만 지쳐있는 모호한 나의 신앙상태만이 분명했다.
무엇을 물어야 할지도 몰랐던 때와, 아니 물어봐야 이런저런 법문을 하실거야라는 생각이 앞섰고, 무엇보다도 들어봐야 내 마음이 달라질 것 같지도 않았었다. 한마디로 꽉 차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기특한 것은 그러면서도, 띄엄띄엄 그 체념적 의문상태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 뿐이다. 매일은 아니어도 일주일에 몇 번씩은 금강경을 독송하곤 했다. 무슨 커다란 업보인것처럼…..
그러던 것이 오늘 광덕큰스님의 보현행원품 강의를 들으면서 감동으로 감동으로 다가왔다. 무엇이 다가왔냐구요? 그것은 금경경의 한 구절,
'여래는 진어자(眞語者)며, 실어자(實語者)며, 여어자(如語者)며 불광어자(不狂語者)며 불이어자(不異語者)니라' , 이 구절이 그대로 그대로 내 마음에 와 닿았다는 것이다. 이상한 체험이었다. 보현행원품 읽는데 난데없는 웬 금강경 구절?
그러했다. 뭔가 깊은 경전의 뜻을 느낀 것이 아니라, 그저 내 마음이 이전과 달리 어떤 경전을 읽더라도 의심 없이 읽을 수 있을 것 같다는 그저 그 순해진 마음상태를 확인한 것 뿐이다. 강강했던 내 마음이 보현행원품을 읽는 내내 유연해졌음을 느낀 것 뿐이다.
그런데, 너무나 가슴이 벅차다. 도대체 내가 무슨 복을 지었기에 보현행원품을 독송하게 되었을까? 한 동네에 거처하셨던 광덕큰스님을 생전에 뵙지 못할 만큼 복은 없었지만, 그래도 뒤늦게나마 큰스님의 생전 강의법문을 접할 수 있게 된 인연에 지극한 감사를 드린다.
아직, 보현행원품을 접하지 못하신 분이 있다면, 일독을 권한다. (같은 경전이라도 법사에 따라 표현방식의 차이가 있을텐데, 나는 광덕큰스님의 보현행원품강의를 접했을 뿐이다)
옛날 어느 사또의 명으로 망부석을 곤장치니 포목절도범이 잡혓다는 전래동화처럼, 부처님의 법문이 소중한 줄 알고, 아는대로 모르는대로 인연따라 자주 접하고, 다만 잊지않고 포기만 않는다면, 공덕이 뒤따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끝으로, 일화하나를 소개한다.
일타큰스님의 상좌스님으로 흔히 100만배 회향으로 수행의 방편을 삼은 분으로 존경 받는 해인스님의 독백을 들은 것이 생각난다.
“ 남들은 내가 100만배 했다고 대단해 하는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참 부끄럽습니다. 권투선수가 모래주머니를 백만번 후려치고 나니까 나중에 금메달이 나왔듯이, 가짜 절 100만배 하고 나니까 절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한 번을 하더라도 태산이 무너지는 듯 무게 있는 절을 해야 그것이 절이지, 숫자 채우는 절은 진정한 부처님과 이심전심되는 절은 못 된다는 것을 느낍니다”
100만배 절수행 후에 어떤 변화가 있었냐는 세인의 궁금증에 대한 해인스님의 진솔한 고백이다.
성수큰스님이 늘 강조하시는 말씀 중에, 헛 말 안하기, 헛 짓 안하기, 헛 걸음 안하기 등이 있지만, 그럼에도, 이제 내가 할 일은 분명해졌다.
스님, 나 이제 열심히 헛 절하러 갈랍니다..헛 절...
이따금 이른 아침에 정적을 깨도 용서하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