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공(圓空)스님하면, 꼭 따라다니는 것이 도봉산 무문관 마지막 수행자, 자동차 등 일체의 탈 것을 거부하고 오로지 도보로 행각하시는 청정한 수행자로 알려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원공스님의 존재를 처음으로 알게된 것은 20여년전에 모 월간지 인터뷰 기사때문이었다. 여기에서 무문관 수행으로 깨치셨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 스님은 ‘깨달음 여부는 오직 자신만이 안다’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한 것이 특이한 감정으로 나에게 남아 있었고 몇 년에 한 번씩 이따금씩 원공스님에 관한 기사가 날때마다 혹시 이 분이 그 스님이 아닐까하는 정도였다. 인연이란 참으로 묘한가보다. 그 특이한 감정으로 남아있던 원공스님을 전혀 뜻밖에 만나게 되었던 것이다.
2005년 7월 중순 경, 월요일 아침7시 무렵 청담역에서 한 처사님을 만나 원공스님을 뵈러 도봉산으로 출발하였다. 전날 저녁 약간의 음주와 더위로 잠을 설친 탓이지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이미 약속한 상태였기 때문에 별 생각없이 이끄는대로 따라 갔다.
도봉산자락 미로같은 주택가를 한참 방황한 끝에 어느 평범한 빌라앞에 다다르니, 현관에 선각원(蟬覺院)이라는 조그만 명판이 걸려 있었다.
초인종 누르니, 안에선 기다리고 계셨던지 금방 문을 열어주셨는데, 예기치 않았던 불청객이 따라와서인지 짐짓 놀라시는 표정도 잠시고 곧바로,
“응, 어서와! ” 하신다.
(.......늘 그랬듯이 번거로운 인연이 하나 또 왔군...머 그런 느낌이었다...)
둘러보니 전용 16평 정도되는 자그마한 빌라였고, 내부엔 한지도배된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일체의 전기시절도....(다만 벽면에 대형 전국지도 한 장이 붙어있는 것이 특이했다. 복덕방도 아닌데.....^^)
당연히 비좁은 거실바닥에 방석도 없이 3명이 앉았다. 우유대신 다른 것을 청하자 원공스님은 직접 우린 거라며 냉장고에서 둥글레찻물을 꺼내 어디서 주워왔을 듯한 투박한 밥공기에 따라 주셨다.
나를 안내한 그 처사님과 원공스님과 짧은 대화가 있은 후, 곧바로 내게 눈길을 주신다. 얼른 스님께, 원래는 18년전에 인사드릴 수 있었다고 하니, 의아해 하시기에, 지리산 치맛폭산장과 관련된 1980년대 중반의 모 월간지 기사를 언급하니 이내 입가에 부드러운 미소를 띠시며 빙그레 웃으신다. 이어 산장에 머물지 못하게 된 내력도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나중에 알았지만 스님을 만나는 사람 누구나 거치는 가계(家係)탐방이 이어졌다. 대한민국의 모든 족보내력이 나와있는 백과사전 같은 두터운 책을 펴시고 나도 몰랐던 족성의 내력을 설명해 주시는데, 당신의 인문지리학적 지식이 더해져서 놀랄만큼 재미있었다.
한 시간 좀 못되는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대화가 오갔다기 보다는 스님의 인문지리학 강의를 들은 것이 맞을 것이다. 별 생각없이 방문하였기에 나로서는 물을 것도 딱히 없었다. 고작 물은 것이 스님의 거처를 ‘선각원’이라 이름하신 것이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정도였다.
이에 대한 스님의 대답이 허허로왔다.
“내가 몇 해 전에 이곳으로 왔는데, 그때가 7월경이었는데, 요 앞에 있는 숲에서 어찌나 매미들이 성성하게 울어대던지..... 그래서 蟬(매미 선)覺院이라고 해지..”
별 시답잖은 것을 묻는다는 표정이시다. 무안할지경이었다.
그리고 잠시후, 자리를 일어나게 되었는데, 스님이 갑자기 가기전에 내 집 구석구석 살피고 가라면서, 모든 방과 심지어 비좁은 베란다까지 다 보여주시며 설명해 주신다.
있는것이라고는 한옥 대청마루로 짜깁기한 듯한 나무침대 하나와 조그만 반상1개정도 아무것도 없었다. 전기콘세트와 전구는 도배하면서 모두 떼어냈다 하신다. 전기불을 켜면 달빛을 잃는다면서....
머뭇거리며 어색하게 나와 등돌리는 내모습을 보시곤, 안되었다고 느끼셨는지 현관밖까지 나와 몇 발짝 앞서 가던 나를 불러 세워 한 말씀 건네주셨다.
“이곳 근처에 오면 그냥가지 말고 꼭 들러봐...알았지? 자주 오게나..”
순간 마음은 그동안 내내 불편해 있던 마음 한구석이 편해짐을 느겼었다.
그러나, 그 편안함의 느낌은 잠깐이었다.
나를 안내했던 처사님과 헤어져 혼자 집으로 전철을 타고 오면서 내자신이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칠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원공스님께 부끄럽고, 그 긴 시간동안 자비심을 놓지 않고 대해주시면서도, 나아가 큰 가르침을 주신 것에 감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를 뿐이었다.
이렇게 해서 원공스님과의 첫 번째 만남은 끝이났다.
애초에 어떤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그냥 막연히 원하면 만나게 되는 상황이어서 설렁설렁 인사드렸을 뿐이었다. 그런데, 원공스님과의 짧은 만남이 나에게 끼친 심리적 영향은 상당했다.
먼저, 선각원의 유래에 대한 원공스님의 대답에 대해서는 각자의 몫으로 두면 될 것 같다. 문제는 원공스님께서 직접 한 말씀도 안하시면서 내게 던진 가르침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게 되자, 청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나 이렇게 살어! ” 하시면서 집안 구석구석 친히 보여주셨던 일이다.
나는 당시 이렇게 느겼었다.
..............'이름없는 중에 호기심 갖고 더 이상 오지마. 중이 연애인이냐 아니면 신기한 볼거리냐..잘 봐라 이놈아, 뭐가 있냐? 텅빈 방에 침상하나, 전화1대, 냉장고 1대. 이렇게까지 안하면 너 다음에 또 올려고 할거아냐? 도대체 방안에는 뭐가 있을까 하고 말이야. 그리고 내얼굴 똑똑히 보고가, 이제 막 60이 넘었는데 어때 쪼글쪼글하지? 나라고 머 별수있겠냐? 그리고 이놈아, 이 텅빈 방안에 꽉차 있는 내 살림살이 볼 수 있는 안목은 갖고 왔냐? 쯧쯧쯧 한심한 놈, 생사가 이렇게 바쁜데 남의 살림살이에 정신팔려서 그것도 육안으로 보이는 것밖에 못보는 주제에 아침 일찍부터 웬 호들갑이여? 키큰놈치고 안싱거운놈 없다더니, 그거 사실인가보네.. 용무없이 실없는 얘깃거리나 나누려고 중이나 만나는 한심한 짓은 이제 그만둬,,,,요긴할 때에 꼭 필요할 때에 지극한 마음으로 찾아 나서야해 이놈아! ..................
이런 내마음을 읽으셨는지 아니면 예상하셨는지, 잘가라고 인사하고 들어가시다 이내 다시 돌아와서 근처에 오게되면 꼭 들리라고, 자주 오라고까지 하셨는데, 생각해보니 그게 또 괜시리 인사치레로 하신 말씀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아니, 다시는 오지말라는 말씀보다 더 냉정할수도 있겠다.)
아니, 끝까지 몰랐으면 모르지만, 생각이 여기에까지 이르렀는데, 이젠 자주 들르라는 그 말씀이 마음에 부담으로 남아있다. 그렇지만 게을러서 또 신심이 얕아서 변변찮은 용무도 못만들었고, 요긴한 마음도 들지 않아 결국 그 뒤로 18개월동안 찾아뵙지 못했다. 중간에 두어차례 그 처사님과 관련된 일로 스님과 전화통화한 것 이외에는 ......
이런 속도 모르고 그 처사님은 기회될때마다 함께 가자신다...아, 당신이야 용무가 있으니 가면되지만, 내가 또 괜시리 따라나섰다가 어떤 봉변을 당할지 모르는데 어떻게 가나.....난 못가...
그러다가, 금년 1월 말에 어쩔 수 없이 한 번 더 방문하게 되었다. 그 처사님으로부터 원공스님이 30년의 도보두타행을 회향하는 의미로 마지막으로, 그것도 1년이라는 긴 기간동안 홀로 전국을 순회하기로 하셨고, 3월초에 떠나시는데 전방부대위문이 있어 지금 뵈야 한다기에 이번에 안보면, 너무 오래 못뵙는 것 같아서 따라나섰다.
두 번째 만남은 30여분으로 짧았다. 위문준비로 바쁘신 것 같았고, 그 처사님의 일과 관련하여 안심이 안되시는지 직접 이런저런 당부를 따로 하셨다. 그때 느낌으로는 꼭 자상한 아버지가 아들일을 돌봐주신다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이상이 내가 원공스님과 두 번에 걸친 만난 전부이다. 부끄럽지만, 사실 그때까지 나는 어떤 스님과도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 처사님 덕에 어찌어찌하다 원공스님을 만나보게 된 것 뿐이었다.
그렇지만, 원공스님은 큰 대비심으로 여러 가지 방편으로 나를 대해주신 것 같았다. 다만, 내가 미혹하여 그 가르침을 아직 못 새기고 있을뿐이다.
거룩한 스님들께 귀의한다고 삼귀의를 할 때마다, 불현듯 원공스님의 가르침이 떠오르곤 한다. 내 어찌 귀의대상인 스님들을 허드렛 만남으로 피곤하게 하겠는가?
지금같아서는 원공스님을 한번 쯤은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여쭙고 싶은 것도 있고...다만 두타행 중이시니 내년 3월께나 가능할 것이다.
모쪼록, 원공스님께서 마지막 걷기 회향을 건강하게 무사히 마치시기를 간절히 기원한다....()..()..()..
<<무릇, 청정한 수행자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 아닐 수 없다. 사실 원공스님을 만나기 전에는 원공스님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오히려 첫 만남이후로 이런 저런 경로로 원공스님의 일화를 조금씩 조금씩 주워들어 어느 정도 알게되었을 뿐이다. 원공스님은 상좌도 없다고 한다. 상좌되겠다고 오는 사람은 많지만 하나같이 죄만지을 것 같아 이건 중생구제가 아니라 중생타락으로 이끄는 것 같아 못하시는 것 같다고 누가 귀뜸해준다. 다만, 곁에서 자주 뵌 분들 중에서 원공스님의 청정한 수행에 감복하여 발심하여 출가한 스님들이 있고, 지금도 왕래가 있다는 말씀만 전해들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