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서 70시간...

산으로 바다로 해외로,....

사람들 휴가 떠나기 시작하겠네요~

지리산으로 가시는 분들도 꽤 많으실것 같은데..

제 친구도 자기 남편이랑 2/3일 지리산을 간다네요..

신랑왈 : 지리산은 위험하고 험해서 산악회에 가입해서
같이 가야 되는거 아냐~...

하며 엄청 걱정한다고 하던데....^^

지리산은 가 보신분들 아시겠지만 참 편한 곳이죠..

능선따라 잘 나져 있는 길도 그렇지만,

산세는 깊고 깊어 첩첩산중이라 험할지 모르지만

등산객이 걸을 길은...어느 작가의 표현따라 '어머니의 품'같은 곳이라는게

궂이 그런 표현을 몰랐더라도 스스로 느껴지실 그런 곳....

나무 한 그루, 돌맹이 하나, 풀 한 포기, 흩어지는 구름, 살갗을 스치는 바람....

수없이 많은 풍경들이 각각의 사람에 따라 느껴지는 감정과 표현도 수만가지일꺼에요..

^^...그런데 산장에서의 느낌은 그다지 다르지 않을것 같네요..

아래 칼럼의 글처럼 '잠 못 이루는 산장'이죠~ㅋㅋ^^*

몇년전 첨 산장에서 잤을때의 충격이란......

그림 속 풍경, 낭만쯤으로 생각했다가....

'사람 너비의 번호가 정해진 칸'이란......

그리고......암튼 그 동안 산장에 대해 이것 저것 상상하고 그려본

아름다운 이미지와 상충하는, 말 그대로 충격이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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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의 70시간

자유칼럼그룹 -김수종-


지리산에서 사흘 밤을 자며 종주코스를 따라 걸었습니다. 해발 1915미터의 천왕봉을 밟았으니 ‘지리산등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고, 경남 산청군 중산리에서 시작하여 전남 구례군 노고단까지 이르는 약 35킬로미터의 능선을 걸었으니 ‘지리산종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등산이니 종주라는 말보다 그냥 ‘지리산에서 걷기’라고 말하는 게 낫겠습니다. 등산, 종주, 트레킹이라는 말을 붙이면 나름대로 어떤 기록의 목적을 내포하는 것이지만 나의 지리산 여행은 친구와 함께 그냥 산천경개를 구경하며 느슨하게 걷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걸으면 살고 누우면 죽는다’는 책 제목도 본 것 같습니다마는, 걷는 것처럼 인간에게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걷는 고통이 있고, 걷는 단조로움이 있으며, 걷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그리고 동행자와의 호흡조절과 무언의 대화가 필요합니다. 인간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걷는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걸으면서 내 몸과 마음을 생각하고, 걸으면서 내 바깥의 세계를 생각하게 됩니다.

시간이 멎는 곳

우리는 거리 개념이 마구 깨지는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사천공항까지 50분이 안 걸립니다. 이제 고속도로가 뚫려 서울서 진주까지 3시간이면 달립니다. 자동차 속도로 치면 지리산을 종주하는데 1시간도 안 걸릴 것입니다.
한해 일천만 명이 해외여행을 하는 시대에 우리 국민에게 남한은 너무도 좁은 땅처럼 보입니다. 휴대용 지도를 펼치면 지리산은 한줌도 안 되는 땅이 되고 맙니다.

하지만 실제 산은 지도 속의 산과는 다릅니다. 지리산 속에 들어가 걸으면 심산(深山)과 고산(高山)의 깊은 맛을 느끼게 됩니다. 마을과 도시도, 바다도, 평야도, 저수지도, 차도도 거의 보이지 않은 채 사흘을 걸을 수 있습니다. 천왕봉은 물론 종주능선 어디에 서건 사방을 둘러보면 켜켜이 포개진 계곡과 봉우리들뿐입니다. 도시에 포위된 북한산의 맛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것 같았습니다.

지리산은 시간이 멈춰 있는 곳입니다. 마음만 돌린다면 그곳에서 멈춰진 시간을 볼 수 있으며, 그게 지리산을 음미하는 또 한 가지 방법이 될 것입니다.

돌길을 오르고 숲길을 뚫고 가다 보면 평평한 바위가 계곡으로 돌출된 곳이 가끔 보입니다. 이 바윗돌 위에 서서 깊은 계곡과 봉우리를 바라봅니다. 능선과 계곡을 덮은 숲 위에 골안개가 사방으로 퍼지고, 태양이 구름을 헤치고 햇살을 비춥니다. 오늘 내가 보는 이 풍광이 10년 전이나 100년 전이나 1000년 전이나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경상도 하동의 소금과 전라도 남원의 모시 삼베를 교환하는 장이 열렸다는 화개재가 뱀사골 근처 종주능선 위에 있습니다. 내가 이곳에서 바라보는 산봉우리와 골짜기가 당시 상인들이 바라보던 자연의 모습과 달라진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사람이 한 세상 사는 것이 구름이 피어났다 흩어지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라는 상념에 젖게 됩니다.

사람들이 지리산을 찾는 이유는 다양할 것입니다. 남한 내륙 최고봉을 정복하기 위해서, 심신을 단련하는 극기 훈련이나 명상을 위해서, 아름다운 자연과 대화하고 즐기기 위해서, 백두대간 종주의 스타트를 위해서 등등. 지리산은 산을 찾는 백 사람의 욕구를 모두 충족시켜 줄 아량을 갖고 있는 산이라 생각합니다.

나는 지리산을 찾는 사람에게 시간이 멈춰서 있는 것을 바라볼 것을 권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 멈춰진 시간 곁을 쏜살같이 지나가는 모습을 한번 느껴보기 바랍니다. 이것도 분명 지리산에서 맛볼 수 있는 인생의 여운이 될 것입니다.

살아 천년, 죽어 천년

지리산에서 걷는 맛 중의 하나가 구상나무와 만나는 것입니다.

나는 구상나무를 좋아합니다. 수많은 나무 중에 왜 하필 구상나무냐고요? 그건 나도 명확히 설명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 이성을 찾을 때 표준적인 미녀나 미남만 보지 않고 각기 개성미를 쫓아가듯이, 나무를 좋아하는 것도 그렇다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구상나무의 원산지는 한국입니다. 한라산과 지리산의 해발 1000미터 이상에서 자생하고 그 북방한계선이 덕유산까지 뻗쳐있습니다. 온대우림의 한랭한 고산지대를 좋아하는 나무입니다.

한국인들이 별로 이런 나무에 큰 관심이 없었던 20세기 초에 윌슨이라는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이 나무를 발견하여 서양에 소개했습니다. 그래서 학명(식물의 학술적 이름)이 Abies Koreana Wilson입니다. 미국이나 유럽인들은 이 구상나무의 품종을 개량하여 관상수로 키우고 크리스마스트리로 무척 애용한답니다. 그래서 서양인들 사이에서는 코리언 퍼(Korean fir:한국전나무)라는 이름이 더 보편적입니다.

요즘은 ‘식물주권’이니 ‘종자주권’이니 하는 말이 나오고 구상나무 사례도 많이 거론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내가 구상나무를 좋아하게 된 것은 이런 거창한 정보와는 전혀 상관없습니다. 그리고 그 나무에 대한 구체적 지식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내가 구상나무를 처음 본 것은 10대 때 한라산 꼭대기에서였습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이등변 삼각형 모양을 한 생나무 모습이 소나무와는 전혀 다르면서 서양 동화그림에 나오는 전나무를 연상하게 했습니다. 뼈다귀처럼 하얀 형해를 드러낸 고사목(枯死木)이 이 멋쟁이 나무의 시체란 것도 잘 몰랐습니다.

그때는 지금과 달리 백록담 분화구 주변의 벽면이 온통 구상나무로 덮여있었습니다. 고산지대라 그런지 키는 크지 않았지만 빳빳한 침엽수의 모습과 하늘을 향해 솟은 열매의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내가 구상나무를 좋아하는 이유를 굳이 생각해보자면 두 가지 정도를 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선 구상나무에서는 상록침엽수가 던지는 서늘함의 이미지가 있습니다. 원래 해발 1000미터 이상 고지에서 자생하므로 같은 침엽수지만 소나무보다 구상나무의 상쾌함이 훨씬 원시적으로 느껴집니다. 요즘은 서울 도심에 웬 소나무 정원이 그렇게 많은지 전국의 모양 좋은 소나무는 전부 상경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산속에서 만나는 소나무도 종전처럼 감동을 못 줍니다.

구상나무의 또 하나 매력은 향기입니다. 손으로 그 잎을 비비고 코에 대면 송진보다 더 진한 향기가 코끝을 쏩니다. 침염수림에서 뿜어내는 피톤치드가 살균작용과 정신안정 작용에서 뛰어나다고 합니다만, 그런 성분분석을 떠나서 그냥 구상나무의 향기가 지리산이나 한라산을 걷은 사람에게는 귀한 선물입니다.

똑같이 2000미터에 육박한 고산이지만 지리산과 한라산은 걷는 사람에게 주는 리듬이 다릅니다. 화산활동의 영향으로 원추형 모양을 한 한라산은 올라가는 일과 내려가는 일로 단순하게 구분됩니다. 따라서 일정한 고도에 이르면 구상나무 숲을 만나게 되고 그 고도 이하로 하산하면 구상나무는 시야에서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나 2,3일 걷는 지리산 종주코스는 고도 1500미터를 넘나드는 능선입니다. 법계사에서 노고단까지 가면서 다양한 모습의 구상나무를 만나게 됩니다. 바위틈에 가지를 뻗어 내린 외로운 나무, 산비탈에 군락을 이룬 숲, 그리고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이란 별명이 붙은 고사목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지리산만이 갖는 독특한 매력인 것 같습니다.

잠 못 이루는 산장

남자 100여명이 한 방에서 옆 사람과 몸을 접촉하면 잠을 잔다면 어떤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을까요.

산길을 떠나기 전에 옛 직장 선배에게 지리산 대피소에서 묵는다고 말했더니, 백두대간을 종주한 베테랑 트레커인 그가 대뜸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습니다.
“그것만은 피해라. 한숨도 못잘 것이다. 당신 나이에 잠을 안자고 산길을 걷는 것은 무리다. 걷더라도 걷는 것이 아닐 것이다.”
산행 이틀째 밤 세석평전의 대피소에서 선배의 말을 뼈저리게 체험했습니다.

촛대봉에서 바라보는 세석대피소의 목조건물 모습은 미국 서부의 국립공원에서 볼 수 있는 아늑한 산장 같았습니다. 유연한 능선으로 둘러싸인 산세는 산골동네 분위기를 자아내면서도 해발 1500미터 고산지대의 구상나무숲과 철쭉 관목이 속세와 절연된 고즈넉함을 느끼게 했습니다.
그만하면 밤에 잠도 잘 올 것 같았습니다. 첫날 로터리 대피소에서 잠을 설친 판이라 이틀간 산행으로 고단할 대로 고단한 몸이 드러눕는 순간 골아 떨어질 걸로 기대했습니다.

대피소 침실 내부는 복도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넓은 마루 바닥이 있고 사다리계단 위로 2층이 있었습니다. 머리맡에 번호가 매겨졌는데, 한 사람이 드러누울 수 있는 공간 폭은 70센티미터 내외로 몸을 비틀면 옆 사람과 충돌할 정도였습니다.

저녁 9시가 되어 관리직원이 소등한 후,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악몽의 밤이 시작되는 것이었습니다. 악몽의 정상에는 코고는 소리가 있었습니다.

수 십 명이 코를 골아대는 데 정말 고막이 찢어질 것 같았습니다. “드르렁 드르렁”, “칵 칵”, “끄르르 끄르르”. 코고는 소리가 사람마다 다 다르다는 것을 귀로 확인하는 밤이었습니다. “푸 푸”하며 입으로 숨을 몰아쉬는 소리나 “빠드득 빠드득”하고 이를 가는 소리도 코고는 소리 못지않게 각양각색이고 요란했습니다. 산행이 고단했던지 “끙 끙”하는 신음소리를 비롯해서 온갖 헛소리가 보태졌습니다. 먼데서 가까운데서, 윗층에서 아래층에서 인간이 동물적으로 발산하는 소리로 방안은 불협화음의 경연장이 되고 말았습니다.

모두가 잠을 자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나처럼 잠이 안 들어 몸을 뒤척이며 “C팔 c팔”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이 판국에 한잔하고 뒤늦게 잠자리에 든 사람들이 잡담을 하는 게 고막에 팍팍 박혔습니다. 밤늦게 잠자는 사람 틈을 비집으며 자리에 드러누운 어떤 사람은 휴대폰으로 아내를 불러내어 하루의 산행담을 들려주며 “잘 자거라, 사랑한데이”라고 애정표현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여보시오. 잠 좀 잡시다. 여기가 당신 안방이오! 내 생전 이런 악몽 같은 밤은 처음이네. 정말 미쳐죽겠네.” 그렇습니다. 아내를 행복하게 해주려고 수십명에게 불면의 밤을 만드는 그 사람에게는 오히려 점잖은 꾸짖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면의 움직임은 밤새 계속되었습니다. 뒤늦게 들어와 자리를 찾느라고 플래시를 이 사람 저사람 얼굴에 비추는 일, 플래시도 없이 어둠 속을 헤매면서 남의 몸을 만지는 일 등등...
몸을 뒤척이다 화장실에 가려고 대피소 밖으로 나왔습니다. 잠 못 이루는 여러 명이 아예 방에서 나와 담배를 피우며 불면의 고통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다시 방으로 들어와 보니 내 자리에 어떤 친구가 드러누우려다 말고 “우리 일행이 아닙니까?"라며 배낭을 들고 사라지는 것이었습니다.

새벽 두 시가 되자 초저녁부터 코를 골며 자던 일행이 주섬주섬 일어나 산행준비를 하면서 대피소는 아침의 소란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렇게 악몽의 밤이 지났습니다. 몸이 고단하다고 잠이 꼭 오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무데서나 드러누우면 나무토막처럼 잠에 빠지는 사람들이 정말 부러웠습니다.

세포에 비상이 걸리다

“주인님, 왜 생전 안하던 짓을 합니까. 그냥 하루 산행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안심했는데 이게 뭡니까. 내 동료들이 모두 주인님의 도깨비 같은 행동에 혼비백산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제발 하산해서 편하게 잠도 자고 우리도 쉬게 해주십시오.”

이틀간 불면의 밤을 지내고 능선을 오르는 나에게 내 몸속의 세포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원래 산길에 어두운 데다 신체 여기저기서 고장 사인이 슬슬 나오는 나이여서 정말 몸속의 모든 세포에 비상이 걸렸다고 하는 표현이 딱 맞는 것 같았습니다.

머리는 내 신체의 일부가 아닌 냥 무거웠습니다. 요즘 들어 이상한 느낌이 드는 허리가 걸음을 내디딜 때마다 뜨끔거렸습니다. 동행하는 친구가 먹을 거리등 무거운 짐은 맡아줬지만 이렇게 무겁게 배낭을 메고 산길을 걸어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돌길을 올라가는 것 못지않게 내려가는 것도 고통스러웠습니다.

기껏해야 관악산이나 북한산에, 그것도 적당한 코스를 가끔 걷는 것에 익숙했던 나의 세포와 조직과 장기에게 나흘을 내리 걷는 것은 비상사태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정말 다행인 것은 그렇게 시원찮던 무릎 관절이 이번 산행에서만큼은 크게 말썽을 부리지 않고 피스톤역할을 그럭저럭 잘 해줬던 것입니다. 정말이지 허리가 아픈데 관절까지 말썽을 피웠다면 난감할 뻔했습니다.

허리는 살살 달래고 무릎은 격려하며 걸었습니다. 이럴 때 상상력은 큰 힘이 되었습니다. “내 세포는 엔진이고, 그 수십 억 개의 엔진이 지금 내 몸속에 과잉으로 쌓인 노폐 지방을 연소시키고 있다. 이 산행이 끝나면 내 몸은 가볍고 날씬해질 것이다.”
사실 나흘 동안의 종주를 끝내고 체중을 달았더니 변함이 없었습니다. 흘린 땀만도 서너 말은 될 것 같았는데 말입니다.

고통의 산행에도 상쾌한 이벤트가 있었습니다.
오르고 내리는 험한 산길 중에 간간히 나타나는 평평한 길을 걷는 것은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 같았습니다. 길어야 10여 미터의 흙길이지만 두꺼운 등산화 밑으로 느껴지는 부드러운 감촉은 카페트의 몇 배나 되었습니다. 나무그늘이 있는 능선위에 비옷을 깔고 드러누워 잠시 취한 휴식도 꿀맛이었습니다.

곰 이야기

자리를 깔고 드러누워 쉬는 곳에 노란천의 표지판이 걸려있었습니다. 반달곰 그림과 함께 ‘곰 출현지역’이라고 쓰여 있습니다. 종주코스를 따라가다 보면 자주 눈에 띄는 것이 이 표지판입니다.

지리산이 다른 산과 다른 것 중의 하나가 곰이 서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리산은 최후의 반달곰 서식지로 야생 곰이 살고 있습니다. 환경부가 다시 시베리아에서 사육 반달곰을 들여다 방사하여 새로운 곰 생태계 복원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몇 마리는 죽고 몇 마리는 야생으로의 도전을 거부하여 다시 사육장으로 귀환했다고 합니다. 10여 마리는 아직 지리산에 있습니다.

국립공원 관리직원이 방사한 곰들의 행태를 알려주었습니다. 지리산에 풀어놓은 반달 곰 중에는 야생의 적응을 거부하고 자꾸 인간에게 접근하는 일이 많다고 합니다.
이들은 등산로 바위에 떡 버티고 등산객을 바라본다고 합니다. 배낭을 지고 그냥 지나가는 것은 위험합니다. 배낭에 먹을 것이 있는 것을 안 곰이 뒤로 덤벼들기 때문입니다. 등산객들은 과자나 먹을 것을 던져줍니다. 먹이를 받아든 곰은 등산객에게 등을 돌리고 고쳐 앉는다고 합니다. 볼일 봤으니 지나가도 좋다는 뜻이라나요.
이렇게 인공음식을 받아먹다 보니 곰들은 적응력을 잃어갑니다. 이빨도 썩어갑니다. 어쩌면 인간과 그렇게 비슷할까요.

곰은 꿀을 무척 좋아합니다. 하루는 반달곰이 산속에 놓아둔 벌통을 두 앞발로 들고 도망치는 것을 보고 벌통 주인이 쫓아가다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그 모습이 사람이 하는 짓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에 너무도 기가 막혔던 것입니다.

방사한 반달곰과 야생상태의 지리산 반달곰이 서로 만나 사랑하고 새끼를 낳아야 건강한 곰의 생태계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에 길들여진 반달곰은 정말 거친 야생에 돌아가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곰은 원래 근친상간을 회피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야생회귀를 싫어하는 반달곰들은 가족끼리 만나고 살다보니 근친상간을 피할 수 없게 되어 종족의 건강에 심각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지리산 보호 산지기들의 견해입니다.

과연 지리산이 반달곰의 서식지로 건강한 곰 생태계가 회복될 수 있을까요. 참 흥미로운 프로그램이라고 봅니다.

산은 물이다

법계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남사면은 지리산 등산코스 중 가장 가파르다고 합니다. 천왕봉을 바로 코앞에 둔 등산길에 천왕샘이 있습니다. 진주 남강의 발원지라고 쓰인 안내판이 있습니다. 짐작컨대 해발 1800미터쯤은 되니 남한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샘일 듯합니다.

한 모금 마셨더니 차가운 기운이 온 몸의 세포 속으로 퍼지는 기분이었습니다. 시중에서 파는 먹는 샘물과 달리 약간 씁쓰름한 맛이 100% 자연 샘물임을 입증하는 듯했습니다.
거대한 암벽밖에 보이지 않는 천왕봉인데 그 암벽 밑에서 샘물이 나오는 것이 신기합니다.

천왕샘 외에도 지리산 능선코스의 군데군데 샘물이 많습니다. 장터목, 세석평전, 선비샘, 연하천 등은 지치고 목마른 행인에게 새로운 힘을 채워주는 이름난 샘터입니다.

어디에서 나온 물방울이 모여 샘을 이루는 것인지.

지리산 절경 중의 하나가 운해(雲海)입니다. 구름이 바다같이 보인다는 뜻으로 옛사람들의 풍류가 깃든 구름 묘사입니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얕은 땅에 사는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그 형형색색의 변화를 봅니다. 그러나 그런 구름을 보고 바다같이 느끼는 사람은 없습니다. 지상에서 일정한 고도에 올라가야 구름이 운해처럼 보입니다. 비행기를 타고 여행하는 현대인들은 구름바다 위에 두둥실 비행기가 떠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느낍니다.
비행기가 없던 옛날 지리산의 고산준령에 올랐던 사람들이 눈 아래 펼쳐진 운해를 보고 느꼈을 그 감흥은 대단했을 겁니다. 현대인들도 비행기에서와 다른 운해의 아름다움을 지리산에서 느낄 수 있습니다.
장마의 언저리인 7월은 지리산의 운해가 더욱 돋보이는 계절입니다.

지리산에서는 구름이 형성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온이 급격히 올라가거나 떨어지는 아침 또는 저녁녘에 깊은 계곡의 수해(樹海)에서 연기 같은 안개가 몇 줄기 피어오르는가 싶더니 계곡 전체가 구름으로 변하면서 산봉우리로 스멀스멀 올라왔습니다. 이렇게 피어 올라온 구름이 이동하다가 다시 골짜기를 향해 쏟아집니다. 마치 엷은 비단 폭이 계곡을 빗질하며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계곡을 타고 상승하는 구름과 계곡을 따라 하강하는 구름을 가장 실감나게 볼 수 있는 곳으로 연하천(煙霞泉)이 있습니다. 연기와 노을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의 샘터로 대피소가 있습니다. 구름과 저녁노을이 이루는 변화가 무쌍한 곳입니다. 이곳에서는 밤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또 하나의 장관을 이루기도 합니다.

지리산은 물이 만들어지는 곳입니다. 바로 운해가 작은 빗방울입니다. 역서(易書)에 보았던가요. 머리는 차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해야 한다는 수승화강(水昇火降)의 원리가 있습니다. 물이 올라가지 않고는 골짜기의 물이 생길 수가 없습니다. 물이 하늘로 올라가서 지구를 식혀주는 구름의 이치 속에 바로 지리산 운해의 건강한 순환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산행을 시작한 첫날 가벼운 비를 맞으면서 걸었습니다. 산행이 끝나는 넷째 날 연하천 대피소에서 노고단 입구까지 내내 안개와 빗속에서 걸었습니다.

서울거리에서 정장을 하고 가다가는 단 2분도 참지 못할 빗줄기였지만 그냥 맞으며 걸었습니다. 마음의 각오라는 것이, 또 상황의 변화라는 것이 그런 불편쯤은 받아들이게 만듭니다. 코 속으로 스며드는 골안개의 산뜻함과 눈섭에 매달리는 물방울의 감촉을 느끼며 걷는 것도 마음먹기에 따라서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을 것입니다. 빗길이 정 싫다고 해도 지리산을 그만큼 밟은 값으로, 그리고 아름다운 운해를 감상한 대가로 비싸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구름 사이사이로 굽이굽이 흐르는 섬진강이 멀리 내려다보이는 구례군 성삼재 위에서 지리산 걷기는 끝났습니다. 섬진강이 왜 흐르는 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국립공원 제1호

미국을 여행할 때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여행하다 ‘내셔널파크(National Park)’라는 표지판을 보거든 무조건 들어가서 구경해라. 후회가 없을 것이다.”
남한에 20개의 국립공원이 있습니다. 모두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만, 지리산을 제일로 꼽은들 트집 잡을 사람은 많지 않으리라 봅니다.

지리산은 우리나라 정부가 1967년에 지정한 최초의 국립공원입니다. 최초이자 최대입니다. 공원으로 지정된 넓이가 471평방킬로미터, 약 1억4천만 평입니다. 이 공원이 제공하는 혜택을 경제적으로 계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깨끗한 공기, 동식물의 다양성, 강물과 지하수의 수원으로서의 녹색댐, 연간 1000만 명의 탐방객이 느끼는 즐거움 등등.

요즘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탄소 저장고로서의 숲이 가치는 올라가고 있습니다. 지리산 국립공원 산림의 탄소저장 능력이 경제적 가치로 환산될 날이 임박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리산 천왕봉 주변의 등산로 암벽을 보면 곳곳이 붕괴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국립공원 직원의 말에 의하며 등산로를 중심으로 한 파괴가 눈에 확연히 들어온다고 합니다. 천왕봉의 실제 높이는 1915미터가 안된다는 얘기도 합니다.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이르는 등산코스는 막바지에 이르면 대단히 위험하게 보입니다. 등산로가 사람의 발길에 부서지고 빗물에 패이면서 조그만 계곡으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조심해도 사람이 밟으면 땅은 허물어지기 마련입니다. 풍화작용에 의해 자연적으로도 붕괴됩니다. 그러나 가장 효과적으로 보전하며 자연을 즐기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전시행정에 필요한 도로 그만 만들고 국가예산 이런데 투입하는 게 국민건강에 유익하지 않겠습니까.

국립공원 1호 지리산, 국민에게 기여하는 만큼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